유비가 황제에 즉위한 것은 헌제에 대한 배신행위다? 이에 대한 토론이 며칠 전 삼갤에서 벌어졌는데 상당히 참신하고 경청할 것들이 많아서 블로그에도 소개해본다. 삼갤에서 '육의'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갤러가 '유비가 황제에 즉위한 것은 헌제에 대한 배신행위다' 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에 대한 근거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헌제가 조비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긴 것은 선양(상호합의)에 의한 것이다.

2. 헌제가 산양공으로 강등되어 살아있음에도 유비는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발상(장례)하여 헌제를 죽은 자로 만든다.

3. 결국 유비는 이와 같은 일련의 선양과정을 인정한 것으로 헌제에 대한 발상은 자신이 황제에 오르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주장은 '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갤러에 의해 구체화된다(http://gall.dcinside.com/samgugji/303929 참고).

 

즉, 유비가 진정한 한나라의 충신이라면 헌제가 조비에게 선양한 것은 강압에 의한 행위로서 무효, 따라서 한나라는 멸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외에 천명하는 것이 순리다. 또한 헌제가 선양한 뒤 조비에게 살해당했다는 풍문이 돌았다고 하더라도 유비는 쉽사리 헌제의 죽음을 인정하지 말고 조금 더 시간을 두어 전후사정을 살펴보았어야 하고, 설사 그것이 사실로 확인됐다 하더라도 유비가 황제에 오르는 것은 심사숙고하여 백번천번 고려한 뒤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헌제의 선양소식이 들리자마자 스스로 상주가 되어 헌제를 장사지냈고 곧장 황제 자리에 오른다. 한의 충신을 자처했던 유비로서는 스스로 황제에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헌제를 정치적으로 죽이는 방법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스스로가 황제가 되기 위한 졸렬한 술수에 불과하며 헌제와 조비간 선양행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역적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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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론을 펼쳤다.

 

첫째, 유비가 황제에 즉위했다고 하여 헌제와 조비간 선양의식을 전면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유비는 자신의 황제즉위를 포고하는 조칙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조조의 아들 조비는 흉역한 마음을 품고는 신기(神器)를 훔쳐 차지했습니다. 군신(群臣-뭇 신하), 장사(將士)들이 이르길, 사직이 무너지려 하니 저 유비가 응당 이를 닦아 2조의 대업을 잇고 천벌을 공행(龔行-봉행)해야 한다 했습니다. 저 유비는 덕이 없어 제위(帝位)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 서민(庶民-백성)과 바깥의 만이(蠻夷) 군장(君長)들에게 물으니 그들이 모두 말하길, ‘천명에는 응답하지 않을 수 없고, 조업(祖業-선조의 유업)은 오래도록 폐할 수 없으며, 사해(四海)에 주인이 없어서는 안된다’ 하며, 솔토(率土-온나라 땅)가 저 유비 한 사람을 의지하며 바라봅니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또한 한조(漢阼-한나라의 제위)가 장차 땅에 떨어질 것을 근심하여, 삼가 원일(元日-길일)을 택해 백료(百寮-백관)들과 함께 단(壇)에 올라 황제의 새수(璽綬-옥새와 인끈)를 받듭니다.'

 

'조비가 신기를 훔쳐 차지했다'라는 말과, '선조의 유업은 오래도록 폐할 수 없고 사해에 주인이 없어서는 안된다'라는 표현을 볼 때 유비는 헌제와 조비의 선양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강압에 의한 찬탈행위로서 무효로 보았다. 하지만 어찌됐든 헌제가 황제에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끊어진 한의 명맥을 계승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황족인 자신이 황제에 자리에 올라 역적인 조비를 처단하겠다는 것이 유비의 생각이었다.

 

둘째, 유비가 황제에 오르는 것은 당시 상황에 비추어 불가피한 상황이다.


중국사에서 황제라는 것은 대륙의 정통한 지배자를 뜻한다. 황제와 왕은 직위에서는 고작 한 계단 차이이지만 정치적 의미로 볼 때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조비가 이미 선양의식을 통해 황제에 자리에 오른 상황에서 유비가 아무리 이를 부정해봤자 '한중왕'의 신분에 있는 한 그는 제후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유비는 스스로 황제에 자리에 올라 자신의 왕국은 제후국이 아니라 조비의 '위'와 대등한 위치를 가진 독립국이었음을 선포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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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 같은 토론이 벌어지기 전에는 '유비의 황제즉위는 정당하다'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의 의견을 살피다보니 상당부분에서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즉, 유비의 황제즉위는 피할 수 없는 결과였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매우 졸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비시가 황제즉위를 반대하다가 좌천된 것도 이러한 점을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유비는 자신이 황제에 자리에 오르기 위해 헌제와 한나라의 멸망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게다가 유비는 어렸을 때부터 황제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나는 유비란 인물에 대해서 '능력 있는 야심가'로 평가하고 있다. 어찌본다면 '난세의 간웅'이란 수식어는 조조가 아닌 유비에게 어울린다고 볼 정도로....... 그럼에도 漢을 계승하겠다는 유비의 정신만큼은 진실로 보고 있었는데 이번 토론을 계기로 상당부분 나의 견해가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정말 유비는 자기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 헌제의 죽음과 漢의 멸망을 이용한 것일 뿐이었을까? 그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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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62202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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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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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백랑

2013.08.08
11:45:06
(*.233.63.81)
마침 관련 논점이 튀어나와서, 이와 관련된 제 견해들을 모아봤습니다.

구라뱅뱅

2013.08.08
11:51:30
(*.49.168.253)
황제되고 싶어서 죽겠는 유비한테 절호의 기회~

선비욜롱

2013.08.08
11:57:52
(*.124.224.111)
근데 어렸을 때 드립은 그냥 훗날 얼추 들어맞아서 기록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방만해도 진시황을 행차를 보고 "저래야 사나이답지"라고 말한게 훗날 황제가된 자신을 계산하고 한 발언이 아닐테니까요.

관성대제

2013.08.08
12:45:43
(*.36.141.229)
유비에 포커스가 되어있네요
참칭을 적극 권한 사람이 있지요! 누굴까요?

사마휘

2013.08.08
14:16:48
(*.234.26.150)
한 7~8년 전에 나왔던 이야기가 또 나오는군요. 그때는 상당히 팽팽하게 양자의 의견이 부딪쳤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는 자치통감에서 유비가 자칭인가, 참칭인가(찾아볼 겨를이 없군요.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서 써봅니다.) 했다고 표기합니다.

그로 인해서 사마광이 후한-조위선양을 정통성이 있다고 보았고, 실제로 선양이라는 절차를 거친 조비가 정통성이 있다고 결론이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뭐 결과야 어쨌든, 유비가 헌제의 몰을 확인하지 않았던 잘못이 크고(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비는 선양의 절차를 밟았을 뿐이고, 헌제가 살아있음으로 인해서 유비의 행동은 참칭이라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고 봐요. 조선조 유명한 유학자들이 "아니야, 아니야. 정통성은 유비에게 있다. 조비는 찬탈한 거야."라고 말한 것으로 볼 때에는 또 그 나름대로 일견 고개를 끄덕일만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유비가 실수를 했을 뿐, 어차피 헌제가 죽었음이 확인 되었다면 올랐을 일이고, 애초에 안 죽은 사실을 알았다면 시간이 늦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촉의 정체성이 한의 계승에 있기 때문이죠. 결과론을 놓고 참칭이라고 하는 건데, 결과론이 아닌 시각으로 보면 참칭이라고 표기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참칭이 아닌, 뭔가 말장난 같지만 어쨌든 유비의 정신은 진실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ㅁㅁ

2013.08.08
15:03:44
(*.233.19.14)
토론과 별개로 인기 정치인이라는 것은 결코 약자가 아니죠.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 명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치인 개개인을 놓고 봤을 때 어떤 정치인도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미 권력의 단맛을 봤고 인기 정치인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입지 여하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보아온 인물인지라 처음에야 의기를 갖고 정치에 입문했다해도 궁극의 속내야 음흉한 건 다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건 비단 유비 뿐 아니라 고금을 막론한 어떤 정치인들도 해당사항이고요.

망탁조의

2013.08.08
15:05:21
(*.250.43.215)
참칭 안하면 위나라는 황제국, 촉나라는 왕국.
그러므로 촉나라가 위나라의 신하국임을 자처하는건데 당연히 참칭해서 맞불을 놓아야 하고,

신하들이 2인자를 황제로 세우는 까닭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부귀공명입니다.
승상에게서 임명 받을 수 있는 최고 관직과 황제에게서 임명 받을 수 있는 최고 관직은 분명히 다르고, 황제국과 왕국의 대립으로 가면 당연히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황제를 섬기려고 그러지 왕이나 주목을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건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어하는 구직자의 심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듯.

실제로 제갈량이 유비를 설득한 근거 중에 하나가 자꾸 고집을 부리면 신하들이 유비 곁을 떠난다는 것이었음요.

사마휘

2013.08.08
15:08:05
(*.234.26.150)
뭐 촉나라도 엄밀히 말하면 자칭 왕국입니다. 후한서의 기록을 따르면요.

SameOldStory

2013.08.08
16:53:58
(*.232.40.239)
왜 이런 유비에겐 관대한 기준을 조조가 공, 왕에 오를 때는 사람들이 이해를 안 하는 지.

망탁조의

2013.08.08
17:14:42
(*.250.43.215)
유비와 조조가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요.
저는 위왕 취임이 어쩔 수 없었다고 보는 사람이긴 합니다.

망탁조의

2013.08.08
17:16:00
(*.250.43.215)
그리고 조조에게 적용되는 잣대를 왜 유비에게 적용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따지면, 이건 위빠나 촉까들도 논란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진 못함요.

바람처럼

2013.08.08
22:46:47
(*.109.52.190)
유비의 야심 + 당시의 정세가 복합적으로 적용한 불가피한 상황.

근데 애초에 유비가 연의에서 마냥 착한 사람도 아니었고 이게 굳이 문제될 일인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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