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은 IF 역사를 가정하며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곤 하는데

 

그 많은 IF 역사 중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었으니,

 

바로 '주유가 빨리 죽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에 대한 토론이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삼국지의 인물은 바로 주유다.

 

이런 사감을 조금 섞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왕좌지재'의 재능을 갖추고 군주를 보좌하며 한 시대의 역사를 이끌어간 제갈량에 비견할 인물을 감히 꼽아보라면 난 주저없이 첫번째로 주유를 언급하고 싶다.

 

적벽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분명 중국의 정세는 그가 죽을 때까지 주유를 중심으로 하여 흘러갔다.

 

적벽대전에 승리하여 조조의 천하통일 야망을 분쇄시키고, 


조인과의 1년여에 걸친 형주공방전에서 승리하여 손오의 세력권을 형주로 확장시킨 동시에

 

남군 이남의 땅을 유비에게 떼어주어 근거지를 마련해줌으로써


손유 동맹의 기초를 확립시켰다.

 

그리고 원대한 제왕의 전략인 '천하이분지계'를 실현하기 위해 익주로 향하던 도중의 아쉬운 병사.

 

고작 1년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명 당시의 시대의 흐름은 조조도 아니고, 유비도 아니고, 제갈량도 아닌,

 

바로 주유를 선택하여 그를 함장으로 삼아 흘러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요인들이 주유의 죽음을 아쉽게 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다음의 항목에 따라 분석을 해보았다.

 

------------------------------------------------------------------

 

[1] 군략가로서의 재능

 

주유는 손오의 창업공신이다. 손책이 강동을 정벌할 때 기록상으로 가장 먼저 얻은 신하가 바로 주유였고, 그 뒤 주유는 의형제이자 주군인 손책과 종군하며 수많은 전투에 참여해 창업의 기틀을 닦았다.

 

분명 손책은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발휘한 '전투형 주군' 이었다. 하지만 빠른 나이에 요절함으로써 손오엔 큰 군사적 공백과 허탈감이 발생했는데 손책 사후 동오의 군권을 장악하여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한 사람은 손견 때부터의 원로공신인 정보, 한당, 황개가 아닌 젊은 주유였다.

(물론, 정보 또한 군권의 반을 짊어진 공신이었지만 기록상에서 보여지는 그 둘의 우열은 확실히 주유 쪽이 위였던 것 같다.)

 

손책 사후 동오의 군권을 젊은 주유에게 일임시킨 손오의 결정은 옳은 선택이었음이 적벽대전을 전후로 입증이 된다.

 

보통 군략은 '전략'과 '전술'로 구분되는데 다음의 사건들을 통해 주유의 전략적 능력을 고찰해보자.



 

1. 주유의 전략적 역량


 

(1) 형주를 병합하여 최강의 군세를 자랑하고 있던 조조에 대해 4가지 약점을 들며 손권의 결단을 촉구

 

적벽대전에 앞서 당시 조조의 군세는 가히 최강이었다.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그의 군세는 수십만에 이를 정도로 강대했고 더욱이 형주를 무혈로 점령해 몽충과 투함 수천대를 확보함으로써 적어도 양적인 측면으로는 동오의 수군역량을 상회했다.

 

이런 엄청난 조조의 군세에 당시 손오의 내부정세는 '항복론'이 우세하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노숙과 주유는 유비의 군사 제갈량과 연합하여 결전론을 주장, 특히 다음에 나오는 주유의 명쾌하고 객관적인 전략적 고찰은 손권의 결심을 결전으로 이끌어 조조와 대치하게 한다.

 

주유가 조조의 약점으로 지목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북쪽 땅이 아직 완전히 평정되지 않아 마등과 한수가 배후의 위협으로 자리잡고 있다.

2) 날씨가 추워 말에게 먹일 꼴(=말먹이풀)이 적어 그들의 장기인 기병력을 잘 활용할 수 없다.

3) 중원에서 온 병사들은 강남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장기간 주둔하면 반드시 병이 날 것이다.

4) 손오의 장기는 수전인데, 익숙치 않은 수전으로 도전해오는 조조의 선택은 옳지 못한 전략이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객관적인 정세분석인가! 이는 분명히 손권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청사진이었고 이러한 전략에 따라 주유는 자신의 주력을 적벽으로 이동, 장강을 사이에 두고 조조와 대치했고 몇 차례의 수전으로 조조의 기선을 제압한 뒤 화공책을 활용하여 마침내 조조의 주력을 격파하기에 이른다.

 

적벽대전과 관련한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조조의 군대는 이미 많은 병사들이 질병에 시달려 싸우기도 전에 약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주유의 예측대로였다. 또한 적벽에서 패배한 조조는 주유가 앞서 지목한 배후의 위협세력인 마등을 회유하기 위해 그에게 벼슬을 주고 업으로 불러들이지만 전체적인 서북경영에는 실패하여 211년에 마초가 봉기하여 동관으로 진격하는 사건이 발생, 그를 토벌할 때까지 주력이 서북지방에 묶여 상대적으로 손권과 유비의 세력이 팽창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2) 천하이분지계의 발안

 

공명의 천하삼분지계와 대비되는 제왕의 군략. 주유의 천하이분지계는 손오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적극적이고 원대한 대외정벌 방침이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촉을 얻고 장로를 병합하여 마초와 동맹한다. 그런 다음 자신은 형주의 군세를 이끌고 양양을 점거하여 조조의 심장부로 진격한다면 북방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익주의 주인이 '손권인가 / 유비인가'가 다를 뿐 정확하게 공명의 삼분지계와 일치된다. 이 역시 허황된 전략이 아니었다. 이미 대륙의 2/3을 차지한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선 익주를 병합하여 남방의 군사력을 총동원할 수 밖에 없었고 이미 한차례 대규모 전역에서 조조를 무찔러 그의 세력에 군사적 공백기가 생긴 점,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배후의 위협세력인 마등과 한수의 존재로 조조가 쉽사리 남방으로 재진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수립된 제왕의 군략이었다.

 

이와 연결되어 주유는 손권에게 유비의 세력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동화하여 자세력으로 편입시킬 것을 건의하는데 이에 대한 방편의 하나가 남군 이남의 공안을 떼어주어 유비에게 군사적 거점을 마련해준 일이었다.

 

주유는 형주에서 발휘되고 있는 유비의 신망과 인력자원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적벽에서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집결한 5만의 군세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만이 유비의 병력이었을 만큼, 유비 세력의 무시할 수 없는 저력과 잠재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주유는 차후 조조의 대항마로서 손오가 전체적인 주도권을 장악하고 유비는 어디까지나 손권에 종속된 형태로서 연합하는 형태의 방안을 구상했지만 주유만큼 유비의 잠재력의 무서움을 판단하지 못한 손권이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무산되고 만다.

 

실제로 주유 사후 노숙이 그의 뒤를 이으면서 손오는 강릉을 유비에게 양도하게 되는데, 이는 곧 유비 세력의 전면적인 비상과 아울러 손오의 종속에서 벗어난 대등한 위치의 군웅으로서의 (형식적인) 격상이었다. 이후로 조조의 대항마의 주체는 유비로 전환되고 적벽대전 승리의 주역인 손오는 고작 형주에 연연하는 신세로 전락, 삼국시대가 끝날 때까지 역사의 변방으로 머무르고 만다.



 

2. 주유의 전술적 역량

 

주유의 전술적 역량은 확연하다. 손책과 함께 강동을 평정하는 와중에 유훈을 격파하고 황조를 토벌한 일 같은 세세한 것들을 제쳐두고서라도 적벽대전의 승리 하나만으로도 그의 전술적 역량의 우월함은 입증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언급하고자 한다.

 

바로 적벽대전 직후 벌어진 조인과의 1년여에 걸친 전역이다.

 

이 전쟁에서 주유는 조인을 형북으로 몰아내고 남군과 이릉을 확보함으로써 마침내 손견 때부터의 숙원이었던 형주병합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곧 일개 변방세력에 불과했던 손권의 오나라가 천하를 태반이나 차지한 조조에 맞설 수 있는 대등한 군웅으로 올라갔다는 의미인데....... 다음의 사실을 인지한다면 주유와 조인의 공방전이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조조가 원가를 토벌하여 중국 대륙 북쪽을 확고히 자신의 영토로 확립시킨 이후, 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특정지방을 정복하고 세력을 넓힌 사건은 '주유의 형주공략'과 '유비의 한중공격'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최고의 인재라 평가받는 제갈량도 5번에 걸쳐 중원으로 진출했지만 모조리 실패하여 한치의 땅도 빼앗지 못했다. 손권도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 그의 치세 내내 합비로의 진출을 단행했지만 끝내는 모두 실패하여 장강 이남의 영토로만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강유의 북벌 역시 그러했었고 천하의 대세는 삼국시대 내내 조조의 '위'에게 있었고 결국 유비의 촉한과 손권의 오는 모두 위(진)에게 멸망하고 만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생각해볼 때, 조인과의 공방전을 통해 형주남방을 장악한 주유의 군사적 역량, 업적이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 일이었는가를 추정해볼 수 있다. 혹자들은 제갈량의 북벌, 강유의 북벌 때와 적벽대전 직후의 위나라 사정은 틀리다는 점을 이유로 주유의 이러한 군사적 역량을 폄하할 수는 있겠으나 필자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사실, 삼국시대 전반을 통틀어 가장 천하통일에 가까웠던 세력을 꼽으라면 바로 적벽대전 전후의 조조이다. 제갈량의 북벌이나, 강유의 북벌 그 어느 때를 비교해봐도 적벽전 직후의 조조보다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우월함을 가지고 있던 시기는 없었다. 물론 등애와 종회의 원정으로 촉을 병합한 때가 있었지만 위의 촉한 병합은 사실상 삼국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유는 역으로 조조의 대군을 무찌르고 오히려 형주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결과물로만 봐선 제갈량의 북벌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받아야할 주유의 군략적 재능이다.


 

---------------------------------------------------------------------------



 

[2] 주유의 인품 & 주군과의 충성관계

 

주유와 손책은 서로 의형제로서 나란히 교씨의 두 자매를 아내로 맞이한 일화는 대단히 유명하다.

 

오나라 4성이라 불리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강동의 호족체제 가운데서도 주유는 자발적으로 손가에 신하로서 복종하고 충성을 마치는 동시에, 손가의 번영을 위해 모든 것을 매진한 충신 가문이었다.

 

손책, 손권의 입장에서 주유의 가문은 더할 나위 없이 미더운 충신이자 자신의 지지세력으로서 그야말로 피로 연결된 혈연관계나 다름없었던 것이다.(이는 손권이 주유를 형의 예로 대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연의의 폐해 중에 하나가 주유를 상당히 건방지고 자부심이 강한 인물로 묘사를 했다는 것인데........

 

그 어느 기록을 살펴봐도 주유가 자부심이 강했다던지, 성급하고 건방진 성격을 지녔다는 일화는 없다.

 

오히려 손책&노숙과의 일화, 더욱이 나중에 유비의 군사로 발탁되는 인물인 방통이 주유의 영구를 앞장서서 수송해왔다는 사실들을 기억해볼 때 주유는 오히려 차분하고 사려 깊으며 겸손한 인물이었음을 추산해볼 수 있다.

 

이같은 의견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로 정보와의 관계를 들 수 있는데........

 

사서에서도 여러 곳에서 주유와 정보 사이의 불화를 언급하고 있다.

 

손견 때부터 원로공신이자 주유와 함께 좌/우 도독으로 군권을 담당하고 있던 정보는 새파란 젊은이(=주유)가 자신을 제치고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을 달가워 여기지 않았다. 때문에 자주 주유에게 반발하고 모욕을 가했는데 둘 사이가 얼마나 심각한 정도였는가는 형주습격 당시 자신과 더불어 좌/우 도독으로 손교를 임명하려는 손권에 처사에 반발하여 진언한 여몽을 두고서도 잘 알 수 있다.

 

여몽은 그때 손권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폐하께서 손교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면 손교를 쓰시고, 제가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면 저를 쓰십시오. 옛날 주유와 정보가 함께 좌/우 도독이 되어 강릉을 공격했을 때, 비록 일은 주유에 의해 결정이 되었지만 정보는 스스로를 원로공신이라 여기고 주유와 불화하여 국가의 대사를 거의 그르치게 했습니다. 마땅히 지금의 일에 경계를 삼아야할 일입니다.'

 

여몽의 말을 살펴보면 주유와 정보 사이의 불화의 원인은 정보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속된 말로 짬밥으로 후임을 갈군 것인데........ 이에 대응하여 주유는 끝까지 몸을 낮추고 겸양하는 동시에 정보를 원로공신으로 대우했고 결국 정보는 이러한 주유의 인품에 감복하여 그와 친하게 지내는 동시에

 

'주공근과의 사귐은 마치 향기나는 맛있는 술을 마시는 것 같아 스스로 취함을 느끼지 못한다' 라고 언급하여 주유의 인간적 매력을 극찬하였다.

 

------------------------------------------------------------------------



 

주유는 오나라 최고의 모사이자, 손오에 있어 최고의 충신이었다.

 

군략적인 재능이나, 주군과의 관계, 인품에 있어서도 제갈량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의 출중함은 적벽전 직후 1년간의 역사가 주유 공근이라는 인물을 주연으로 흘러가게 만들었으나

 

안타깝게도 36세라는 이른 나이에 병사함으로써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고 만다.

 

주유의 죽음은 많은 것을 남겼다.

 

주유의 죽음으로 비로소 유비세력은 역사의 전면에 당당히 등장하여 익주를 정복하고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손오의 입장에선 그의 죽음으로 생긴 군사적 공백을 잘 메우지 못해


조조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유비에게 내어주고 형주에 연연하는 소극적 세력으로 전락하고 만다.

 

주유의 이른 죽음은 이렇게 삼국의 정세를 판이하게 뒤바꿔 놓았고,


충분히 제갈량과 비견되는 비중있는 인물이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50305605

 

분류 :
조회 수 :
4794
등록일 :
2013.08.10
14:00:25 (*.233.63.81)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private_begagi/30375/827/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30375

손책

2013.08.10
16:06:17
(*.161.190.59)
주유는 경솔한 면이 있죠.
교전 중 화살에 옆구리를 뚫려 중상을 입은 적도 있고.
병사하지 않았다면 입촉 시 전사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예를들면 손견이나 방통처럼 되지않았을까 합니다.

코렐솔라

2013.08.10
16:55:52
(*.52.91.73)
주유는 볼 때마다 술자리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은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술 취했으니 이제 쫌 대충할려고 하면 주유가 뒤돌아 봅니다 으악!

사마휘

2013.08.10
17:04:44
(*.234.26.150)
그래도 네로처럼 죽이진 않았으니, "으으!!!"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까요?

코렐솔라

2013.08.10
17:09:12
(*.52.91.73)
디테일한 지적이군요. 실제로 벌을 받았다는(짤리거나, 어떤 해를 받는 다던가)의 기록은 없으니 으악 보다는 어떤 것이 있을까봐 두려워하는 으으 가 더 적당해보입니다.

맘평화

2013.08.11
12:47:08
(*.129.54.218)
어릴 때부터 사실 저도 주유가 젤로 좋았습니다. 이유는 "잘생겼는데(볼딕) 만능으로 다 잘해서" 단명한 인재중에 방통이랑 더불어 제일 아깝네요.

전술적으로 보니 정말 주유의 형주공략과 유비의 한중공략이 그런 의미가 있군요. 좋은 지적이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연의 때문에 조인이 너프되니 주유가 좀 못해보이는 감도 있고

적벽도 연의에서 제갈량이 거의 마법사처럼 묘사되니 상대적으로 홧병에 죽는 걸로 나오는 주유가 제일로 피해본 것도 맞구요.

이래저래 아까운 부분이 많은 주유네요.

뭉치기

2014.07.01
15:33:27
(*.114.22.87)
1) 북쪽 땅이 아직 완전히 평정되지 않아 마등과 한수가 배후의 위협으로 자리잡고 있다.

2) 날씨가 추워 말에게 먹일 꼴(=말먹이풀)이 적어 그들의 장기인 기병력을 잘 활용할 수 없다.

3) 중원에서 온 병사들은 강남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장기간 주둔하면 반드시 병이 날 것이다.

4) 손오의 장기는 수전인데, 익숙치 않은 수전으로 도전해오는 조조의 선택은 옳지 못한 전략이다.



백랑님의 이 생각대로라면 주유의 적벽대전이 사실은 그닥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네요.

미백랑

2014.07.06
02:55:11
(*.97.59.86)
저건 그야말로 약점 중에 하나로 지적한 거지... 적벽전이 쉽다는 뜻은 절대 아니죠. 조조에게는 저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병력과 물자, 외교적 지원이 있었으니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 오(吳)나라 멸망과 곽마의 반란 [5] 미백랑 2013-08-31 6707
23 마속과 제갈량의 북벌 : 작전참모 마속 [7] 미백랑 2013-08-30 4889
22 교주를 둘러싼 진나라(晉)와 오나라(吳)의 전쟁 [2] 미백랑 2013-08-28 5072
21 기타 삼국지 불가사의 사건 (5) 진궁, 연주를 여포에게 바치다 [5] file 미백랑 2013-08-26 7581
20 마속은 제갈량에게 엄청난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4] 미백랑 2013-08-22 4599
19 기타 시세를 바꾼 역사의 결단 (3) - 손권, 머리를 조아려 나라를 구하다! [2] 미백랑 2013-08-18 5136
18 기타 시세를 바꾼 역사의 결단 (2) - 조조, 천하의 대세를 결정짓다 [1] 미백랑 2013-08-16 4436
17 기타 시세를 바꾼 역사의 결단 (1) - 손권, 결전의 탁자를 베다! [2] 미백랑 2013-08-14 3970
16 제갈량 사후 위연과 양의의 대립 : 위연과 양의는 왜 싸웠을까? [21] 미백랑 2013-08-13 6510
15 북벌로 살펴보는 제갈량의 군략 (2) - 북벌 군략 '서북지방 경략' [1] 미백랑 2013-08-12 4064
14 북벌로 살펴보는 제갈량의 군략 (1) - 공명의 군략은 너무나 정직했다 [1] 미백랑 2013-08-12 5065
13 주유 남군 전투 고찰 : 주유는 단순히 강릉만 점령한 것이 아니다 [15] file 미백랑 2013-08-11 7194
12 주유가 1년 동안 조인과 싸운 것은 폄하될 일이 아니다 [18] 미백랑 2013-08-11 5465
» 적벽대전의 영웅 주유 - 그의 이른 죽음이 아쉽다! [7] 미백랑 2013-08-10 4794
10 유비는 무슨 까닭으로 백성들을 데리고 형주에서 도망쳤을까? [5] 미백랑 2013-08-09 4772
9 유비가 황제에 즉위한 것은 헌제에 대한 배신행위다? [12] 미백랑 2013-08-08 4772
8 손권의 칭제와 제갈량의 절맹호의(부제 : 제갈량의 굴욕) [7] 미백랑 2013-08-08 4415
7 조조는 왜 '찬탈자'로 불리는 것일까? [8] 미백랑 2013-08-08 4647
6 기타 삼국지 불가사의 사건 (4) 서량의 금마초, 조조에게 반기를 들다 [9] file 미백랑 2013-08-06 7796
5 관우뢰 사건 : 관우는 기밀유지에 실패했다 [8] 미백랑 2013-08-04 5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