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연코 삼국시대 가장 뛰어난 군략가로 조조와 주유를 꼽는다. 위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조조의 군략이 뛰어남은 말할 필요가 없고, 주유 역시 적벽대전을 통해 조조의 천하통일 야망을 불사르고 삼국정립의 막을 열었다는 점에서 다른 지휘관들과는 한 단계 높은 격(格)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혹자들은 주유의 군략에 대해서 비판한다. 바로 적벽대전 이후 조인과 남군에서 1년 동안 싸웠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보자면

 

‘적벽대전 이후 조인이 이끄는 패잔병을 상대로 남군을 빼앗는데 1년이나 걸렸으니 주유를 뛰어난 지휘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필자는 위의 의견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한다. 실제 전쟁은 Koei 삼국지처럼 30일 단위로 성 하나 따먹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의 기록들을 참고해보자.

 

------------------------------

 

[선주전(유비)]


(212년) 선주가 진군하여 낙(雒-광한군 낙현)을 포위했다. 이때 유장의 아들 유순이 성을 수비했는데 공격을 받고 근 1년이 지났다. 건안 19년(214년) 여름, 낙성이 격파되었다. 진군하여 성도(成都-촉군 성도현)를 포위한 지 수십 일 만에 유장이 성을 나와 항복했다.



[무제기(조조)]


(200년) 2월, 원소는 곽도, 순우경, 안량(顔良)을 보내 백마(白馬)에서 동군태수 유연(劉延)을 공격하고, 원소 자신은 군을 이끌고 여양(黎陽)에 도착해 장차 황하를 건너려 했다.


(중략)


(201년) 여름 4월, 황하 일대에서 군세를 떨치고, 창정에 있던 원소군을 쳐서 깨뜨렸다. 원소는 돌아가 흩어진 병사들을 다시 거두고 반기를 든 여러 군현들을 공격해 평정했다.



[선제기(사마의)]


요동태수 공손문의(=공손연)가 모반하자 선제를 경사(京師)로 불렀다.


(중략)


천자가 이르길,


“갔다가 돌아오는데 얼마나 걸리겠소?”


라 하자 선제가 대답했다,


“가는데 백 일, 돌아오는데 백 일, 공격하는데 백 일이 걸리며 휴식하는 데 60일을 잡으면 1년이면 족합니다.”



[후주전(유선)]


건흥 12년(234년) 봄 2월, 제갈량이 야곡을 거쳐 출병하고 처음으로 유마로 운량했다. 가을 8월, 제갈량이 위빈(渭濱)에서 죽었다.

 

-----------------------

 

삼국시대에서 가장 군략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유비, 조조, 사마의, 제갈량의 경우와 비교해보았다.

 

먼저 유비는 반란세력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성 두 개를 빼앗는 데 걸린 시간이 2년이다.


조조는 어떠한가?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원소의 공세를 관도와 창정에서 막아내는 데에만 1년 이상을 소비했고 원소가 죽은 후 반격하여 하북을 평정하기까지 자그마치 7년이 걸렸다.


사마의의 경우에는 걸어가는 시간만 왕복 200일, 공격하는 데 100일, 휴식하는 데 60일이라는 구체적인 수치(총 1년)를 밝혀 당시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됐는지 보여주고 있다.


제갈량은 어떠한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오장원으로 출병하여 반년(=6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전투 없이 농사만 짓고 있었으며 그나마 북원으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곽회에게 막혀서 실패했다.


주유의 상황은 이상에서 언급된 네 명보다 훨씬 더 상황이 열약했다고 생각된다. 당시 손권과 조조의 격차는 관도대전에서 대치한 조조와 원소의 차이보다 훨씬 심했고 적벽으로 몰려온 조조의 병력은 사서에서 언급된 것만 하더라도 수십만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였는데 이에 비해 주유의 병력은 많아봐야 5만 내외였다.

 

혹자들은 조인이 이끈 병력들이 패잔병이라며 애써 주유의 성과를 폄하하고 있는데, 적벽대전에 참가한 수십만의 병력이 화공으로 모조리 증발했을 리도 없고 당시 남군을 지키고 있던 조인은 행 정남장군의 직위를 가진데다가 추가적으로 서황이 돕고 있었고 양양에는 악진이 남아 그를 원조하고 있었다. 당시 형주를 지키고 있던 조조군의 병력이 얼마였는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아무리 많아도 5만을 넘을 수 없는 주유에게 수적으로 열세였다는 정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주유는 양동작전을 구사하여 이릉에서 승전했으며, 조인이 직접 이끄는 주력과 회전하여 오군 총사령관 주유가 화살을 맞는 고전 끝에 승전하여 결국 강릉을 점령하게 된다. 확실히 다섯 번에 걸친 북벌 기간 동안 무도와 음평만을 손에 넣었을 뿐인 제갈량과는 전술적으로나, 결과물에서나 압도하는 주유의 전공이다.


결론적으로 조인과 1년 동안 싸웠다고 해서 주유의 공적이 폄하될 이유는 전혀 없다. 삼국시대 全기간을 통틀어서 적벽대전 전후만큼 조조의 세력이 강했던 적은 없었고 그 차이가 최소로 좁혀졌던 유비와 조조간의 한중전에서도 양군은 1년 6개월을 대치했다. 이를 살펴본다면 고작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적벽에서 승전하고 남군을 차지한 주유의 공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정말 오나라 제일가는 영웅다운 행보였던 것이다.

 

--------------------------------


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77277179 참고

 

 

분류 :
조회 수 :
5464
등록일 :
2013.08.11
18:15:02 (*.233.63.81)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private_begagi/31176/26b/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31176

dd

2013.08.11
18:41:40
(*.49.14.150)
적벽서 5만이라고 쳐도 십만이 넘었다고 친 조조가 지휘하는 군대가 궤멸된 것은 대단한 일이긴 하다고 봄. 근데 문제는 그렇게 따지면 압도적 군세로도 궤멸당한 조조의 군략 역시도 회의가 들 정도. 가령 원소군과 관도에서 회전을 벌였는데 패배한 뒤 포위되서 위급해졌다, 이 점을 감안해봐야 하는 듯. 유수구에서도 손권군을 끝내 격파하지 못하였고.

결국 삼국 정립이 유지된 것이 조조의 군략이 당대 최고수준이긴 하나 압도적이지 못했던 것으로서 결정된 것이겠거능

dd

2013.08.11
18:46:45
(*.49.14.150)
주유 얘기 해본다면 적벽에서 격파, 그리고 1년만에 점령 이 성과가 대단하긴 하였음. 그걸 보면 숨은 고수였는지도 모르겠음. 근데 문제는 제갈량 북벌 정도 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지휘해서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 촉 침공이 군재를 평가할 최고의 기회이나 일찍 죽었으니 아쉽긴 아쉽군요.

미백랑

2013.08.11
19:14:26
(*.233.63.81)
제갈량 북벌이 장기 프로젝트인 게 아니라 그냥 위나라 관중군을 못 이겼기 때문에 길어진 거 뿐입니다. 제갈량은 옹주를 먹으려고 했는데 위나라 방위병력을 못 뚫어서 실패. 주유는 형남에 세력을 마련하기 위해 조인과 싸워서 이겼기에 승리. 이 차이죠.

dd

2013.08.11
19:42:33
(*.49.14.56)
아아 장기보다는 대형이라는 말이 나을 법 했군요. 북벌의 규모는 총사령관의 면면이라던가 병력의 규모, 그리고 싸운 지역의 크기 등을 감안해 주유보다는 더 대형이라 생각하니..

그렇다고 제갈량이 대형이라 힘든 것은 당연 이런 말이 아닌게 솔직히 제갈량이 북벌 많이해 이긴 전투가 얼마나 되나 싶죠. 그 한진춘추 한개?

미백랑

2013.08.11
19:59:46
(*.233.63.81)
주유보다 대형이라는 말에는 http://rexhistoria.net/community_three/31206 참고해보세요. dd님 의견을 듣고 마침 기회가 난 김에 이거까지 다뤄봤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이 북벌에서 이긴 전투는 한진춘추에서 나오는 상규에서의 회전 이거 밖에 없는 거 같네요.

코렐솔라

2013.08.11
19:34:19
(*.131.108.250)
이건 당연하다고 보는 편입니다. 오히려 1년밖에 안 걸린 것을 칭찬해야 하고 만약에 적벽대전으로 주유군이 더 많다 하더라도 그럼 적벽에서 모조리 다 죽인 주유의 공이 더 커질 뿐이니 주유의 군재를 논하는데는 문제가 없죠

뿌잉뿌잉

2013.08.11
20:12:32
(*.149.146.131)
세력 하나를 없애버린 수준의 전면전과 기껏해야 성 하나 따먹는 국지전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센스는 어쩔건가요...

미백랑

2013.08.11
20:15:52
(*.233.63.81)
저는 주유가 남군을 공격한게 그냥 강릉성 하나 따먹는 땅따먹기로는 안 보거든요.

선비욜롱

2013.08.11
22:49:57
(*.124.224.111)
근데 5차 북벌은 제갈량이 죽어서 허공으로 간 것이지 6개월간 헛짓한 것으로 치뷰하기에는 좀 아닌 것같네요.

미백랑

2013.08.12
00:58:49
(*.233.63.81)
헛짓거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전쟁 자체가 길다는 소리입니다. 제갈량도 6개월 동안에 북원 전투 하나(수경주에 따르면 다리 싸움 하나 추가)가 있었을 뿐인데, 주유보고 1년 동안 조인과 투닥거린 걸로 비판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KM학생

2013.08.12
21:25:28
(*.226.158.233)
근데 제갈량 표에 보면 뭐 맹획 친족 시켜서 뭔 짓 했다는 기록도 있고, 별동대 인솔 기록도 있고, 뭔가 많은 싸움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맘평화

2013.08.12
07:36:42
(*.129.54.218)
제가 한중과 장안을 찍어봤습니다. 최단거리 108번 국도를 타고 71h을 걸으면 도착한다는 군요. 거리로는 평균 350km 정도 되고 이 당시를 고려하면 380km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http://kookmindr.tistory.com/184

에서 행군 속도를 고려하면 20~25km/d라고 생각하면 380/20 = 190일 380/25 =152일 그러니 152~190일 편도 대략 170일이 걸립니다.

그러니 이당시 사마의가 1년 얘기한 것 주유가 1년 걸린 것은 속전고수, 속전속결에 속하는 겁니다. 특히나 선제기에 저 내용이 따로 실린 것은 확실히 당시 다른

장수들보다 속전에 능했다를 부각시키려고 넣은 것은 아닌지 생각되기도 합니다.

맘평화

2013.08.12
08:05:05
(*.129.54.218)
이런 바보 삽질을.... 19일 하고 15.2일 군요......지워주세요 ㅠ,.ㅠ

맘평화

2013.08.12
08:19:53
(*.129.54.218)
기초적인 계산을 틀리니 너무 부끄럽네요. 다시 아예 사마의 기준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1500km 가 선제기에 나오는 거리정도로 생각됩니다. 지금으로 보면 (Luoyang 에서 Shenyang정도로 판단) 왕복 200일 편도 100일 하루 15km 정도 되는 군요. 딱 보통 속도네요.

맘평화

2013.08.12
13:11:28
(*.129.54.218)
조인 패잔병설보다는 정말 그 짧은 기간에 다시 공세로 몰아 부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결과가 좋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제갈량 6개월 농성은 조금....예로 들기에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을 연출해서 사마의에게 도발을 한 것으로 봐야 되는 것인데

제가 사마의가 워낙 잘한 것으로 봅니다.

주유가 어떻게 보면 인격적인 면까지 포함해서 보면 조조보다도 못할 것도 없습니다. 정사에서는 가장 무결점에 가까운 장수 인데

위에 어떤 분이 지적해주셨다시피 자기 몸을 잘 사리지 못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큰 단점일지도 거기에 더해 요절한 것이 혹시 과로가

잠재적인 원인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연의에 나온 주유에 대한 묘사가 제갈량에 비해 억울한 감이 있으나 주유가 아니면 제갈량에 누가 비할까 싶습니다.

그리고 세계전쟁사를 다루면 삼국지에서 항상 나오는 전투는 적벽대전 가끔 관도대전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군사적 가치도 있는 전투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양 전투의 승리 측 지휘관 주유와 조조가 정사 삼국지 원투라 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군요.


행군 속도로 위에서 뻘글한 것 일단 사과 드립니다. 하지만 세계사 기준으로 보통 20km~25km/d가 빠른 쪽에 속하고 현대전에는 25~30km/d

제가 알기로 이 때 치중부대 포함 당시 10~20km/d 정도라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영미권 자료 였는데 찾지를 못하겠네요.

바비오

2014.04.12
14:08:30
(*.201.83.16)
주유가 제일 열악했다??

진짜 한심한 주유빠네요... 주유가 제일 나았습니다 ^^

적벽에서 탈탈털린 패잔병 처리하는데 1년거린게 잘한거?

남군에서의 주유는 그가 적벽에서 쌓아왔던 것이 거품이었음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미백랑

2014.04.16
21:09:50
(*.233.63.81)
전혀요.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몰고 온 병력만 수십만이라고 기록될 만큼 삼국지 최대의 숫자였지요.

제갈량이나 유비나 그런 병력 규모의 위나라와 싸운 적이 있나요?

게다가 당시 조조는 화북+형주에다가 유장의 지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죠. 가장 규모가 컸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적벽에서 패한 수십만의 병력이 전부다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여문사과

2016.02.20
07:20:14
(*.197.131.83)
대단한건 맞는데 이게 삼국지 최고로까지 평가받을만한건가? 화살 맞고 골골댄것만 해도 영...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 오(吳)나라 멸망과 곽마의 반란 [5] 미백랑 2013-08-31 6707
23 마속과 제갈량의 북벌 : 작전참모 마속 [7] 미백랑 2013-08-30 4888
22 교주를 둘러싼 진나라(晉)와 오나라(吳)의 전쟁 [2] 미백랑 2013-08-28 5072
21 기타 삼국지 불가사의 사건 (5) 진궁, 연주를 여포에게 바치다 [5] file 미백랑 2013-08-26 7580
20 마속은 제갈량에게 엄청난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4] 미백랑 2013-08-22 4598
19 기타 시세를 바꾼 역사의 결단 (3) - 손권, 머리를 조아려 나라를 구하다! [2] 미백랑 2013-08-18 5135
18 기타 시세를 바꾼 역사의 결단 (2) - 조조, 천하의 대세를 결정짓다 [1] 미백랑 2013-08-16 4436
17 기타 시세를 바꾼 역사의 결단 (1) - 손권, 결전의 탁자를 베다! [2] 미백랑 2013-08-14 3969
16 제갈량 사후 위연과 양의의 대립 : 위연과 양의는 왜 싸웠을까? [21] 미백랑 2013-08-13 6509
15 북벌로 살펴보는 제갈량의 군략 (2) - 북벌 군략 '서북지방 경략' [1] 미백랑 2013-08-12 4063
14 북벌로 살펴보는 제갈량의 군략 (1) - 공명의 군략은 너무나 정직했다 [1] 미백랑 2013-08-12 5065
13 주유 남군 전투 고찰 : 주유는 단순히 강릉만 점령한 것이 아니다 [15] file 미백랑 2013-08-11 7194
» 주유가 1년 동안 조인과 싸운 것은 폄하될 일이 아니다 [18] 미백랑 2013-08-11 5464
11 적벽대전의 영웅 주유 - 그의 이른 죽음이 아쉽다! [7] 미백랑 2013-08-10 4794
10 유비는 무슨 까닭으로 백성들을 데리고 형주에서 도망쳤을까? [5] 미백랑 2013-08-09 4771
9 유비가 황제에 즉위한 것은 헌제에 대한 배신행위다? [12] 미백랑 2013-08-08 4771
8 손권의 칭제와 제갈량의 절맹호의(부제 : 제갈량의 굴욕) [7] 미백랑 2013-08-08 4414
7 조조는 왜 '찬탈자'로 불리는 것일까? [8] 미백랑 2013-08-08 4646
6 기타 삼국지 불가사의 사건 (4) 서량의 금마초, 조조에게 반기를 들다 [9] file 미백랑 2013-08-06 7795
5 관우뢰 사건 : 관우는 기밀유지에 실패했다 [8] 미백랑 2013-08-04 5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