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이야 워낙 유명한 전투니 그렇다고 쳐도

 

주유가 조인과 1년 동안 벌인 남군 전역은 제갈량 북벌만큼 고평가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유는 그냥 조인과의 한판 싸움에서 이겼을 뿐이지,

 

제갈량처럼 원대한 국가계획을 수립하고, 한 지방을 겸병하기 위한 국가간의 총력전이 아니었다는 논리로

 

주유가 벌인 전쟁을 의미절하하는 의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필자의 의견은 글쎄?

 

일단 적벽대전 승리 후에 주유가 그린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http://blog.naver.com/begagi/50150305081 - 손권은 왜 유비가 형남4군을 점령하도록 놔뒀을까?

http://blog.naver.com/begagi/50150305198 - 손권의 형남지분에 대해서

 

 

이상의 글을 토대로 손권 & 유비 양 세력간 전략을 그려보면

 

1. 형주 장강 일대에서 조조의 세력을 몰아낸다.

2. 손권이 장강 일대에서 조조와 상대하고 있는 동안 유비는 형남에서 유표의 잔여 무리들을 안무하는 역할을 맡긴다.

 

 

즉, 주유는 남군 하나 달랑 먹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유종 항복 이후 강을 따라 형성된 조조군의 세력을 일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주유의 움직임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지도로 살펴보자.

(참고로 본인은 한자와 지형에 약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틀린 점은 바로바로 지적해주기를 바란다)

 

2.jpg

 

(파란선이 장강, 빨간점이 강릉, 노란점이 이릉, 분홍점이 한산)

 

주유의 전술은 이렇다.

 

1. 이릉을 공격하여 강북과 강남간 연결을 끊어놓음.

2. 형남 일대에 세력을 굳힌 다음에 강을 건너 강릉으로 진격하여 조인의 주력군을 격파.

 

 

1번의 근거로 이릉전투 당시 유비가 마량을 파견한 대목을 들 수 있다.

 

 

[선주전(유비)]


2월, 선주 친히 제장들을 이끌고 자귀에서 진군하여, 산을 따라 고개를 넘어 이도(夷道-남군 이도현) 효정(猇亭)에 주둔했다. 한산(佷山)에서 무릉으로 통하여 시중 마량(馬良)을 보내 오계만이를 위로하자, 이들이 모두 서로 잇따르며 호응했다. 진북장군 황권은 장강 북쪽의 제군을 감독하며 이릉도(夷陵道)에서 오군(吳軍)과 서로 맞섰다.

 

 

황개전을 보면 무릉의 오랑캐들이 반란을 일으켜 황개가 태수가 되어 이를 진압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정황상 주유가 이릉을 점령하고 난 뒤의 일로 보인다. 즉, 주유는 이릉을 점령함으로써 강릉을 거점으로 형주를 수비하고 있던 조인과의 연결을 끊어놓았고 이는 곧 강남 일대가 손권의 세력권으로 편입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물론, 이는 이릉점령 후 조인과의 회전에서 승리했기에 가능한 일).

 

 

제갈량 북벌의 1차적인 목표는 흔히 옹양주겸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일단 기본적으로 장안과 농서와의 길을 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제갈량은 항상 여기까지는 잘 했지만


궁극적인 과제라 할 수 있는 적군의 주력을 격파하지 못해 항상 전략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주유는 이것을 모두 해낸 것이다.


이릉을 점령함으로써 강남과 강북을 분단시키고, 강릉에 주둔하고 있던 조인을 격파하여


그를 양양으로 밀어버린다. 그 결과 손권은 남군을 차지하고 유비는 형남에 주둔하게 되어


손&유 동맹 1차 전략을 완벽하게 성공시킨다.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는 주유의 팬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리 살펴봐도 제갈량의 북벌보다 주유의 전쟁이 훨씬 더 뛰어나보인다.


팬심의 치우친 필자의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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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77282363

 

 

조회 수 :
7193
등록일 :
2013.08.11
19:57:18 (*.233.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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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8.11
20:05:08
(*.131.108.250)
황개의 일은 예전에 제가 파보면서 싸워서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집해 보면 황개의 영향력이 끼친 곳은 장사 지역이에요.

코렐솔라

2013.08.11
20:05:26
(*.131.108.250)
차라리 주태가 있었던 잠 땅이 무릉 지역이니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나아보이네요

미백랑

2013.08.11
20:06:43
(*.233.63.81)
[황개전]

무릉(武陵)의 오랑캐(蠻夷)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읍을 공격하고 수비하자, 이에 황개에게 태수직을 맡겼다.

↑ 전 이 기록을 참고했는데, 황개가 무릉태수 된게 아닌가요?

코렐솔라

2013.08.11
20:09:56
(*.131.108.250)
옛날에 삼갤에서 이걸로 한참 싸웠는데 무릉만이의 활동반경이 무릉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활동한게 눈에 보이고요.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여러 그윽하고 깊숙한 파巴, 예 醴, 유 由, 탄읍誕邑의 후侯와 군장君長은,

에 대한 집해의 설명을 보면

반미潘眉가 이르길 : 파, 예는 응당 파릉巴陵, 예릉 醴陵 이고, 유, 탄은 상세하지 않다.



조일청이 이르길 : 파, 예, 유, 탄은 4 물의 이름으로, 유는 유수油水, 탄은 담수澹水다. 수경주 : 예수澧水가 다시 동으로 흐르니, 담수가 여기서 나왔다. 왕중선 王仲宣 의 증사손문시시 贈士孫文始詩 에서 이른 “장구한 담, 예”다.

으로 모두 장사의 지명이라네요

미백랑

2013.08.11
20:14:18
(*.233.63.81)
음.. 그렇군요. 저는 마량의 행보와 황개의 기록이 서로 딱 맞아떨어지는 사안이라 이릉 점령이 남북 분단의 의미가 있다고 봤는데 조금 더 파봐야 될 거 같네요.

코렐솔라

2013.08.11
20:16:00
(*.131.108.250)
무릉에서 활동한 오군의 기록이 필요하면 주태가 잠 땅에 주둔한 것이 있습니다.

코렐솔라

2013.08.11
20:13:40
(*.131.108.250)
참고로 이때 황개가 무릉태수이니 익양이전에 무릉이 손권 땅이라고 주장한게(손유의 사망시기도 + 해서요) 푸른미르님, 집해의 지명설명으로 볼 때 황개는 사실 장사태수라고 주장한 것이 구라뱅뱅님이에요.

dd

2013.08.11
21:16:19
(*.49.14.154)
사실 주유가 잘하긴 했는데 제갈량도 남정을 성공시켰다능. 제갈량의 북벌은 1차를 보면 사단 몇개를 거느린 군단장으로서의 역할 아니냐는 생각. 이는 상대한 조진이나 사마의도 마찬가지. 저 전투는 주유와 조인간의 사단급 정도? 암만 봐도 유비가 형남 태수들 몰아낸 전쟁보다 좀 더 큰거 이런 생각이네요.

게다가 지형적으로나 동원한 규모면에서 제갈량이 좀 더 많이 불리한 전쟁을 하긴 하였다는 이야기. 주유가 적벽에서의 승리로서 제갈량보다 군략이 뛰어난 것 같은 생각은 하는데 저 전쟁을 제갈량의 북벌과 비교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dd

2013.08.11
21:33:12
(*.49.14.154)
다만 글쓴이가 "전쟁을 비교" 한 것이 아닌 "전략 기획력"을 비교했다면야 진창에 대비했는데 진창으로 진입했다던가 오장원에 갈 것을 예상했더니 그쪽으로 간 것 vs 주유가 빠른 기동으로 저 글에 나오는 전략을 성공을 시켰다는 점에서 을 통해 "응변의 장략" 문제로서 주유를 제갈량과 비교, 높이 평가한 듯함.

근데 문제는 저 전쟁은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서 싸워 그것을 타개했냐" 의 면이 걸림으로서 제갈량의 북벌과의 비교까지는 힘들다고 봄. 주유의 촉 정벌이 수행되었다면 그땐 비교가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여문사과

2016.02.20
07:28:39
(*.197.131.83)
이 글을 보니 편견 맞네 ㅇㅇ

구라뱅뱅

2013.08.12
09:50:31
(*.49.168.253)
어흑 ㅠㅠ 장강 자체가 잘못그려짐

구라뱅뱅

2013.08.12
09:54:45
(*.49.168.253)
맨 우측 하구에서 서으로 가는게 아니라 남으로 내려가야되고요. 악양(파구)에서 북서로 해서 남군으로 올라가서 이릉 자귀로 흐르는 강으로 표시하셔야...

미백랑

2013.08.12
12:43:19
(*.233.63.81)
어흑, 어쩐지 장강 지도랑 뭔가 좀 다른 거 같아서 불안불안했는데... 이게 보면서도 하도 물줄기가 많아서 장강인지 지류인지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시 그려도 좀 실수할 것 같아서 죄송스럽지만 시간 남으시면 장강 줄기 좀 그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미백랑

2013.08.12
12:45:22
(*.233.63.81)
아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경계선이랑 겹쳐서 제가 물줄기를 중간에 놓쳤네요. 어디인지 알 거 같습니다.

여문사과

2016.11.28
03:28:50
(*.197.131.248)
악질 오나라 빠돌이&악질 촉까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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