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과 양의는 왜 싸웠을까?

 

물론 그 둘의 성격상의 차이와 거기에서 오는 감정대립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여기서 그런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당시 촉한의 정치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았다.

 

먼저 위연과 양의의 불화에 대한 기록부터 살펴보자.

 

[비의전]

 

건흥 8년(230)에 비의는 중호군으로 전임되었고 후에 또 사마로 임명됐다. 마침 군사 위연과 장사 양의가 서로 증오하여 항상 항자리에 앉을 때마다 논쟁을 했다. 위연은 어떤 때는 칼을 들고 양의를 죽이려 했으며 양의는 얼굴에 눈물을 가득 흘렸다.

 

[양의전]

 

제갈량이 여러 번 출병함에 있어 양의는 항상 계획을 짜서 부대를 편성하고 군량미를 계산했는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번에 처리했다. 군사상의 필요품도 양의의 조달에 의해 얻었다. 제갈량은 양의의 재간을 매우 아꼈으며 위연의 용감함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항상 두사람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걸 한스러워했다.

 

----------------------------------------------

 

삼국의 관직은 저마다 차이는 있겟지만 기본 바탕은 漢에 두었다.

 

기본적으로 漢의 중앙관은 삼공구경으로

 

삼공에는 태위, 사도, 사공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사도는 승상의 前體로서 민사를 주관하는 관직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begagi/50150233864 참고)

 

그런데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갈량을 녹상서사, 승상, 가절에 사례교위를 겸하게 했고

 

유선 치세에서는 익주목까지 얹어주게 되는데

 

이에 따라 전통적인 승상의 권한이 비약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즉, 기존의 민사권에서 군사권까지 모두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그에 따라 승상부의 역할 또한 변화될 수 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승상부 속관으로는 장사 - 사마가 있는데

 

제갈량 치세 당시 장사와 사마는 예외없이 무관직을 병행하여 공명을 보좌했다.

(아무래도 당면한 국가적 목적인 북벌 때문이었으리라)

 

--------------------------------------------------

 

이쯤에서 위연의 출신을 살펴보자.

 

[위연전]

 

위연은 자가 문장이고 의양군 사람이다.

부곡의 신분으로 유비를 수행해 촉으로 들어가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아문장군에 임명되었다.

 

기록에 있는 것처럼 위연은 부곡 출신이다.

(부곡에 대해서는 http://blog.naver.com/begagi/50150233777 를 참고하길 바란다.)

 

나중에 위연은 곽회를 격파한 공으로 전군사 정서대장군 가절월 남정후로까지 승진하게 되는데

 

이는 무관직에서는 관우 이후 최고의 관직이었다.

 

오늘날로 보면 사병의 신분에서 대장까지 승진한 그야말로 뼛속까지 군인사람으로

 

병영생활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반면에 양의는 어떠한가?

 

[양의전]

 

양의는 자가 위공이고 양양군 사람이다. 건안 연간 형주자사 부군의 주부가 되었는데 부군을 등지고 양양태수 관우에게 갔다. 관우는 그를 공조로 임명하고 서쪽으로 가서 유비에게 인사하도록 했다. (중략) 유비는 한중왕이 되었을 때 양의를 발탁하여 상서로 삼았다. (중략) 건흥 3년(225)에 승상 제갈량은 그를 참군으로 삼아 부서의 일을 담당하도록 하고 남쪽으로 원정을 떠나려고 했다. 건흥 5년에 제갈량을 수행하여 한중으로 갔으며 8년에는 승진하여 장사가 되었고 수군장군을 더했다.

 

위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양의는 기본적으로 행정직이다. 유비 시절에는 주부, 상서의 직책을 맡았었고 비록 제갈량 밑에서 참군과 수군장군직을 더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당시의 승상부는 민사와 군무를 동시에 아우르는 국정 총괄 독재기구였으므로 무관으로서의 그 의미는 덜하다.

 

----------------------------------------------------

 

자, 뭔가 감이 오지 않는가?

 

다들 군대갔다온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짬도 안되는 갓 임관한 신임소위가 병영생활 운운하면서 병장들 갈구면 병사들한테 인정 못받는다는 거..

 

직책은 높아도 최소 소령 이상 되지 않는 위관급들은

 

짬되는 부사관들 존중해준다는 거.......

 

---------------------------------------------------

 

위연과 양의의 불화는 개인적인 성격 차이 외에도

 

이러한 비정상적인 국가시스템 또한 한몫을 했으리라 본다.

 

이엄을 탄핵할 때 서명을 올린 신하들의 명단을 보면

 

영장사 수군장군 양의가

 

정남장군 유파, 정서장군 강유, 편장군 비의보다 서열이 높은 걸로 나오는데

 

이러한 문관직과 무관직의 불균형은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위연으로 하여금 심한 불쾌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비록 위연 자체는 230년 기준으로 정서대장군에 전군사 가절월로 양의보다는 몇단계 높은 직급이었지만

 

애초에 모든 군무가 승상부 내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승상부 속관 중에서 최고위직인 양의의 영향력 밑에서 벗어나긴 힘들었고

 

이에 따른 불만과 둘 사이의 성격차이는 위연의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았으리라 생각된다.

 

이쯤에서 위연이 반란을 앞두고 비의에게 했던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승상은 비록 죽었으나 나는 건재하오. 승상부의 측근 관속들은 영구를 운구해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나는 직접 제군을 지휘에 적을 공격해야 마땅하오. 어찌 한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천하의 일을 내팽개칠 수 있겠소? 더구나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의 지휘를 받아 뒤를 끊는 장수가 되라는 말이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은 승상부의 측근 관속들, 그리고 양의의 명을 받아 라는 구절이다.

 

정상적인 지휘체계에선 양의는 자신보다 몇단계 상급자인 위연을 통솔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군인인 위연은 이런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이고

 

이는 곧 승상부의 핵심관료였던 양의와의 불화로 나타난게 아닐까 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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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4948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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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8.13
12:58:40 (*.233.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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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백랑

2013.08.13
13:00:08
(*.233.63.81)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과연 양의가 위연을 지휘할 입장이 되었냐는 것.' 제갈량이 사망하면 당연히 통수권은 위연에게 돌아가야 정상인데, 그를 배제하고 양의를 세웠다는 점 자체가 위연을 승상부와 배제하는 왕따놀이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초삽질

2013.08.13
13:09:32
(*.227.152.174)
제갈량이 죽을때 비의, 강유, 양의만 불러서 명령을 하달한고, 그리고 명령 내용을 비밀로 한 것 양의가 군통수권을 잡으면서 비의가 그 상황을 위연에게 대신 전달한것. 이것만 봐도 위연은 철저하게 배제당한거라고 볼 수 있음. 위연의 성격이 안 좋고 제갈량이 죽는 순간이라서 안 불렀다고 생각해줄 수는 있는데, 위연에게 직접 명령을 하달했으면 최소한 반란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봄

SameOldStory

2013.08.13
13:35:53
(*.232.40.239)
직위 체계, 관직 체계, 명령 하달까지 모든 곳에서 촉은 정상적이질 못 했음. 이게 다 제갈량 때문은 아니지만, 분명 이걸 알고 있는 제갈량이 제도의 개선을 꾀하질 못 했다는 점에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순 없으리라 생각함.

SameOldStory

2013.08.13
13:36:48
(*.232.40.239)
제갈량은 초인이 될 수 없음에도 초인이 되려고 노력한 점을 높이삼과 동시에, 그 때문에 국가의 중대사를 그르친 측면도 있음.

헐헐

2013.08.13
14:11:18
(*.76.158.100)
사도는 승상의 前體로서 민사를 주관하는 관직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미백랑

2013.08.13
15:55:02
(*.233.63.81)
http://blog.naver.com/begagi/50150233864 참고

삼공의 순서로는 태위가 가장 앞에 위치했으며 승상으로부터 변해 내려온 사도가 뒤에 자리했으며(중략)
조조는 후한 관제를 개편하여 삼공제도를 없애고 승상을 우두머리로 하는 대각제(臺閣制)를 수립했다.
그로부터 승상은 군정(軍政)의 대권을 잡고 황제도 실질적으로 승상의 통제 속에 있도록 했으나
조비의 위나라 건국 후에는 자연히 승상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명칭을 사도로 개칭했고

출처 : '중국관제통사' 이창천 譯


써놓고 보니 사도가 승상의 전체가 아니라, 승상이 사도의 전체라고 보는게 더 알맞겠네요.
제가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약간 실수한 듯.

헐헐

2013.08.13
17:41:04
(*.62.172.18)
승상을 약화시켜 사도로 개칭하였다고하니 사도의 성격을 승상의 직무에 덧씌울 수 없음 .. 게다가 위는 위 . 촉은 촉. 관제사 관련은 위나라 위주. 촉은 제대로 파기 힘들기 때문. 당장 허정전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임

헐헐

2013.08.13
14:12:12
(*.76.158.100)
승상부는 국정총괄 독제체제는 또 뭔가요?

헐헐

2013.08.13
14:23:08
(*.76.158.100)
비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은 또 도대체 뭔가요?
이건 뭐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할지 ....

미백랑

2013.08.13
16:00:23
(*.233.63.81)
후한의 기본 체제는 삼공. 그런데 촉한은 삼공이 아니라 제갈량이 승상으로서 대권을 움직였음.
기본적으로 중국 전 역사에서 통치의 기본은 황제 친정체계임. 그런데 촉한의 경우 제갈량에게 권력이 집중된 체계였으니 비정상.
비정상이라는 단어가 좀 그렇기 하네요. 그렇다면 전통방식과는 다른 기형적인 체제라고 해두죠.

헐헐

2013.08.13
17:46:58
(*.62.172.18)
위촉오 모두 승상이란 관직 있었음(위야 조비대에 승상직을 파내버렸지만)덧붙여, 제갈량은 섭정. 섭정에게 실권이 몰리는건 당연함. 비정상이나 기형적이거나 뭐가 다른건지 모르겠네요.

미백랑

2013.08.13
23:08:05
(*.233.63.81)
위나라는 당연히 승상을 없앨 수밖에 없었고(그러다가 사마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사마소가 승상으로 올라가죠), 오나라와 촉의 승상은 권한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는 거 같습니다. 헐헐님께서는 섭정에게 실권이 몰리는게 당연하다고 하셨는데, 그 실권을 몰아주기 위해서 제갈량에게 승상 자리를 준 거죠. 그 예가 바로 제갈량 사후에 승상이 공석이라는 점....... 제가 촉한 정치체계가 기형적이라고 한 것은, 원래 중국 역사는 황제 중심 체제인데 특이하게도 촉한은 치세 내내 신권 우위의 체제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헐헐

2013.08.14
09:08:45
(*.76.158.100)
중국사 중 섭정은 그리 기형적이라 볼 수도 없고, 래어한 케이스도 아닙니다. 게다가, 그 섭정은 다름 아닌 유비가 직접 지명했구요.
+ 기형적/ 비정상적 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적절치 못해요.

구라뱅뱅

2013.08.13
14:26:12
(*.49.168.253)
제목에 대해서 답변하자면

제갈량을 제외하고

승상부 속관 중에서는 양의가 대빵
북벌 군부 중에서는 위연이 대빵

제갈량이 있으면 통제 가능, 허나 가뜩이나 사이 안 좋은데 제갈량이 없다면 그냥 겜 끝

망탁조의

2013.08.13
14:47:17
(*.250.43.215)
문관직 계급이 무관직 계급보다 높다고 하여 그것이 비정상적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듬.

고려시대도 문관직 최고 계급이 무관직 최고 계급이 높았고, 그 무관직 최고 계급도 순수 무관이 아니라 김부식, 강감찬 등 문관이 역임하는 경우가 많았음.
개인의 용맹함보다 군략이 더 중요했기 때문인데 삼국지만 봐도 사마의, 제갈량, 육손, 견초 등 문관들이 군사를 지휘한 경우가 많습니다.

미백랑

2013.08.13
15:57:02
(*.233.63.81)
문관직 계급이 높다고 해서 비정상인게 아니라. 승상한테 대권을 넘긴 체제 자체가 비정상적인 거죠. 제갈량 권한이 조조가 승상인 시절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은데다가 한은 삼공체제가 기본으로서 권력의 최정점에는 황제가 있었는데 이걸 제갈량이 실질적으로 거의 혼자서 대행했다는 점에서 기형적이죠.

망탁조의

2013.08.13
16:05:58
(*.250.43.215)
제갈량에게 권력이 몰빵된 것이 절대 정상적인 체제가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하나 그것이 양의와 위연의 갈등 촉발의 요소가 될 수 있었을지 고민해 봐야 함.
양의와 위연의 갈등이 승상에게 권력이 독점된 촉한의 권력 체제에서 비롯된 체제상의 문제라면 양의와 위연 외 다른 갈등이나 충돌도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미백랑

2013.08.13
16:07:46
(*.233.63.81)
아, 그래서 저는 본문에 '위연과 양의간에 개인적인 사감이 가장 큰 원인' 이라고 인정하고, 별도로 다른 이유를 찾아본 겁니다.

미백랑

2013.08.13
16:28:51
(*.233.63.81)
본문을 요약해보자면, 정서대장군 가절월을 받은 위연이, 승상부 속관 장사 수군장군 양의와 애초에 한 자리에서 전략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느냐로 볼 수 있겠군요. 원래는 안 되는데 촉에서는 가능했던 것이 위연 자체가 저런 직위에도 불구하고 승상부 내에서는 속관 전군사였거든요.

선비욜롱

2013.08.14
11:52:26
(*.124.224.111)
그렇게 제갈량및 재상들한테 권력이 몰빵이 된 상황에서도 훗날 유선이 혼자서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 가능성은 유선이 정치적 천재라서 그 한계들을 무너뜨리거나 제갈량이나 유비가 의도한 시스템 둘중 하나로 추려지지 않나 싶긴합니다.

유선도 사실 권력보존면에선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지만 제갈량이나 그의 후계자들이 북벌을 돌리려면 유씨황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제갈량의 권력이 조조보다 더 할 수 있어도 그 한계는 명확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유염만해도 유선을 간통의심했다고 바지사장이지만 거기장군먹은 인간이 목이 날라간 것을 보면 참...

여문사과

2016.11.28
03:28:13
(*.197.131.248)
악질 오나라 빠돌이&악질 촉까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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