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

 

우리가 흔히 삼국지로 알고 있는 서기 200년경 중국 역사는 어떠한 이야기일까?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고 한실부흥을 위해 싸우는 이야기? 그게 아니면 저마다 혼일사해의 대업을 바라며 숨 가쁘게 살아갔던 영웅들의 이야기? 둘 다 아니다. 삼국지는 조조가 세운 위나라에 맞서 촉과 오가 버텨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며 결국에는 차례대로 멸망을 당한, 결과가 이미 정해져있던 한편의 연극이었다.

 

관도대전을 거쳐 원 씨를 멸하고 화북을 통째로 손에 넣은 조조와 다른 군웅들과의 힘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었다. 그 간격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바로 적벽대전이었고, 가장 근소하게 좁혀졌던 때는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촉과 오 모두 위나라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고 결국에는 263년 촉이 멸망하면서 삼국정립의 축이 무너지게 된다.

 

조금 더 냉혹하게 말해보자면, 적벽대전 이후 위나라가 얼마나 빨리 유비와 손권을 멸하고 천하통일을 할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이 삼국지의 역사이며 그 둘은 그러한 결말을 최대한 늦춰보기 위해 서로가 동맹을 맺고 솥발의 한축을 담당하며 버텨나갔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위나라가 양자의 동맹을 무너뜨리고 실제 역사보다 40년을 앞서 천하를 통일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바로 손권과 유비가 이릉에서 싸운 221년이다.

 

 

2. 위나라와 이릉대전

 

 


 

(동영상은 루리웹 Leet Meet님의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관우가 사망한 219년부터 이릉대전이 발발한 221년까지의 약 2년간은 난세의 간웅이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모든 것이 흘러간 한편의 영화와 같은 시대였다(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begagi/50150298239 참고)

 

삼국지 중후반 전략적 노선은 바로 손·유 동맹인데 그 내용은 간단하다. 천하의 대부분을 차지한 조조에게 맞서서 상대적으로 약한 손권과 유비가 동맹을 맺고 대항하자는 것이다. 적벽대전을 시작으로 결성된 양 집안간의 동맹은 효과적으로 유지되어 조조의 남진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에는 천하삼분의 정립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난세의 간웅은 형주를 미끼로 손권과 접촉하여 공고했던 연합을 붕괴시켰다. 그 결과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가 사망했고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유비는 대군을 이끌고 손권을 공격하게 된다. 이는 위나라에게 있어 천하통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왜냐하면 손권과 유비가 위나라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힘을 합쳤기에 가능한 일인데 바야흐로 둘이 반목하게 되면서 전력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틈을 노려 국력에서 월등하게 앞서는 위나라가 손권과 유비를 공격한다면 그들은 꼼짝없이 당할 공산이 컸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유엽은 당시 위나라의 황제였던 조비를 찾아가 손권을 공격할 것을 진언한다.

 

“지금 손권은 유비의 공격을 받고 곤경에 처했으므로 이를 틈타 공격한다면 반드시 강동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비는 유엽의 진언을 거부한다. 그 결과 오나라는 육손의 활약으로 유비의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고 뒤늦게 후회하며 쳐들어온 조비의 침공도 성공적으로 막아내면서 삼국정립의 혼란기는 40년 이상 더 길어지게 된다.

 

 

3. 손권의 항복과 이릉대전

 

(1) 손권, 스스로 위나라의 번국이라 칭하다

 

조비가 유엽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은 오늘날 많은 식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대개 천시를 알지 못하고 기회를 날려버린 실책으로 보는 것이 대부분인데 필자 역시 이러한 견해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만일 조비가 유엽의 진언을 받아 들여 손권을 공격했다면 큰 손실 없이 강동을 평정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손권을 멸했을 경우 익주 하나로 버티는 촉을 병합하는 것은 등애나 종회의 경우보다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비는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단지‘천시’를 잘못 읽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조비가 유엽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손권이 스스로 신하라 칭하며 위나라의 번국이 되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로 보면 완전한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는 치욕적인 일이었다. 물론, 당시에 조비는 황제였고 손권은 기껏해야 망해버린 漢의 관작인 行거기장군 서주목이자 회계태수였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신하라 칭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손권은 어디까지나 漢의 신하였지 魏의 속국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다.ico_footnote.gif

 

조비 역시 흔쾌히 손권의 항복을 받아들이며 그에게 위나라의 관작을 내려주었는데 당시 손권이 받은 작위는 대장군에 오나라의 왕이었으며, 추가적으로 구석이 딸렸다.

 

 

(2) 전략적 의미

 

오늘날 손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항복사건을 아주 나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동맹국을 배신하여 형주를 뺏더니 고작 하는 일이 조비의 신하가 되는 것이었냐는 불만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손권의 항복이야 말로 삼국시대 전기간을 통틀어 최고의 판단으로 꼽을 수 있는 현명한 결단이었다. 그야말로 머리를 조아려 나라를 구한 신의 한수였던 것이다.

 

손권이 조비에게 항복함으로써 얻은 가장 큰 이익은 이릉대전에서 위나라가 개입하는 것을 방지했다는 것이다. 손권 역시 유비가 쳐들어왔을 때 그 틈을 노려 위나라가 장강을 건너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속절없이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를 쳐서 조비에게 신하라 칭하며 항복을 청했고, 잡아두고 있었던 우금을 돌려보내 우호를 꾀했다. 이에 대해 위나라 조정의 분위기는 모두가 경축할 일이라며 들떠 있었는데 유엽전의 기록을 참고해보자.

 

[유엽전]

 

나중에 유비는 과연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는 모든 국력으로 유비의 군대에 대응하였으며, 위나라에 사자를 파견하여 번국(蕃國)이라고 일컬었다.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축하했으나, 유엽은 홀로 말했다.

 

“오나라는 격절되어 장강과 한수의 바깥에 있으며 속으로는 신하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비록 덕망이 유우(有虞:순임금)와 같지만 오나라는 더러운 성질이 있어서 감동한 바가 없습니다. 오나라는 재난을 당했기 때문에 신하이기를 구한 것이므로 반드시 믿기 어렵습니다. 저들은 반드시 외부로부터는 핍박받고, 내부로는 힘겨워진 연후에 이런 사신을 보냈을 뿐이니 그들의 곤궁함을 틈타 공격하면 그들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무릇 하루라도 적을 내버려둔다면 몇 세대의 근심을 남기게 되므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모두가 손권의 항복을 반기는 와중에서도 유엽만이 홀로 그의 항복이 거짓임을 깨닫고 즉각 오나라를 공격하라고 조비에게 진언한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미 손권의 항복을 받아줘서 왕이라는 작위까지 하사한 마당에 무슨 명분으로 재차 강동으로 쳐들어간다는 말인가? 이는 황제국의 위신상 절대로 행할 수 없는 일이었고 손권은 그렇게 위나라의 개입을 막아내고 유비와의 승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유엽은 이릉대전과 관계된 진언(하나는 손권을 공격하라고 진언한 첫 번째 사건과, 오나라가 이릉대전에서 승리한 뒤 위나라에 불손한 태도를 보이자 뒤늦게 손권을 공격하려는 조비를 만류하면서 신하들을 속였던 두 번째 사건)을 통해‘사사로운 이익을 탐해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무리’라는 탄핵을 받게 된다. 그만큼 유엽의 진언은 당시 명분과 예절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필자의 여러 글에서 고찰했었던 것처럼 명분은 수단을 정당화시켜주는 목적이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손권을 공격하지 않은 조비의 선택을 두고‘명분에 사로잡혀 큰일을 그르친 모자란 인간’이라는 식으로 평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비판이다. 현실세계에서 명분이라는 존재는 물리력을 억제할 수 있는 크나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엽이 이 사건을 빌미로 탄핵 받은 것도 명분을 거슬렀기 때문이며 그 후 조비의 총애를 잃은 그는 우울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4. 결론

 

손권의 항복은 난세의 간웅이 만들어놓은 신의 한수를 회심의 반격으로 다시 돌려놓음으로써 삼국시대 후반기의 역사를 바꿔버린 전기 중에 하나였다. 그 결과 손권은 위나라의 개입을 차단하고 이릉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장강을 독차지한 남방의 강자로 성장했고 진나라에게 멸망하는 280년까지 삼국의 세 왕조들 가운데 가장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손권의 항복을 두고 굴욕적인 일이라 평가하지만, 손권은 한번 고개를 조아린 행동으로 촉을 물리쳤고 위나라의 침략을 예방했으며, 나라를 위나라 다음 가는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불과 수년 뒤에 손권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위, 촉과 대등한 주권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런데도 과연 손권의 항복이 비판받을 만한 일일까? 손권의 항복은 현명한 결단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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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7326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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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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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2013.08.18
02:17:32
(*.148.32.203)
고구려만 보더라도 중국에 번국을 칭하면서 우호적으로 나가니 잘 풀렸다, 근데 강경하게 나가자 물량전을 당하면서 결국 멸망해버렸죠..

현대로 보면 미국의 동맹국이 되서 편하게 사는 것과 적대적으로 나가면서 고립무원이 되거나 이라크처럼 아작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겠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 손권을 비판하는 시각은 저로선 아직 들어본적이 없기에 기회있으면 들어보고 싶군요.

맘평화

2013.08.22
08:25:01
(*.129.54.218)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확실히 나중에 이제병존카드를 적절한 시점에 낸 것도 그렇고 외교 전략쪽으로 손권과 예하 참모들이 촉보다는 한 수 위라고 평가합니다.. 저는 유엽을 굉장히 높히 평가하는데 이게 조조와 조비의 차이가 아닌가도 생각합니다. 특히 촉이나 오에도 유엽같은 사람 하나쯤 있었으면 전세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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