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떠오른 생각인데....


마속은 사실 제갈량에게 엄청난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1차 북벌 당시 북벌군의 움직임.


이게 정말 화려해요.


조운과 등지를 기곡으로 파견해서 조진을 낚은 다음에


제갈량이 이끄는 본대는 곧장 기산으로 향해서 천수 일대에 주둔하고 옹주3군의 항복을 받아내죠.


그리고 가정으로 별동대를 파견해서 장안과 옹주의 길목을 끊어버리는 아주 대담한 작전을 구사하죠.


만일, 1차 북벌이 성공했다면 제갈량은 이 전략만으로도 역대급 군략가 반열에 들어갔을 겁니다.


옹주 전체를 꿀꺽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이었거든요.


근데 가정에서 마속이 전투를 말아먹고 참수된 다음에는 어찌된 셈인지 이처럼 훌륭한 기동작전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2차 북벌에서는 그냥 우직하게 진창으로 갔다가 패배했고

3,4차 북벌은 무도-기산 루트를 통해서 정면 힘싸움하다가 군량부족으로 후퇴했고

5차 북벌은 알다시피 변변한 전투 없이(북원진출하려다가 패배) 농사만 지었죠.


저는 이렇게 2차 북벌부터 북벌군의 기동성이 떨어진 이유가 왠지 마속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마속전을 보면, 분명히 마속은 제갈량과 밤낮으로 전략전술을 논의하던 인간이었거든요.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1차 북벌의 대략적인 전략도 마속과 논의했을 가능성이 큰데


기곡 낚시작전이라든지, 기산우회경로 등등 상당부분을 마속이 입안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제갈량이 가정전투를 맡긴 이유도 실제 전략 발안자가 마속이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요지로 파견한 거라고 가정한다면 모든 의문이 풀리죠.


근데 마속은 작전참모였지 지휘관이 아니라 실전에서 패배했고 그 결과 목이 댕겅~


유능한 작전참모를 잃은 제갈량은 1차 북벌만큼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 거죠.


왜냐? 제갈량은 기모가 부족했으니까.


어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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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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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삽질

2013.08.22
20:37:22
(*.108.4.165)
마속을 그렇게 높게 보지는 않지만, 제갈량의 말동무였던 마씨 2형제는 마량의 뛰어난 외교 능력과 마속의 경우는 선황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계속 곁에 두는 것을 봤을때, 둘 다 뛰어난 달변가였음은 분명해보임

초송

2013.08.23
17:15:44
(*.40.85.26)
꽤 고려해볼만한 추론이나 1차 북벌 이후 제갈량의 안정적(혹은 소극적)인 군운용은 단지 마속의 부재 때문이라기보단,
마속이 워낙 대차게 말아먹은 것에 기인했다는 점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는 문제라 확단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속의 실패로 제갈량이 응변장략이나 기모 따위를 싫어하게 된 것이 이후의 북벌전략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정도는 무리가 없을듯...

venne

2013.08.24
21:16:29
(*.36.133.201)
"첫" 북벌이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고 봅니다. 1차북벌은 위 조정의 허를 찌른 기습이었기에 그정도의 기동성과 위의 호응(3군항복, 조진낚시)이 있었고, 그 후의 북벌에서 이렇다할 기책이 보이지 않는건 그만큼 위의 방비가 튼튼했기 때문에 파고들기 쉽지않았다라고 보거든요. 음.. 본문에 추가하자면 기동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마속의 죽음과 함께 마속이 수만군을 말아먹었기에 기책에는 성과만큼에 비례하는 희생이 따른다는걸 실감했다는점이 크다고 봅니다. 머릿속으로 '실패시 이정도 피해를 입을수도 있다' 이것과 그 피해를 직접 경험하는건 다르니까요.

히무라 켄신

2014.09.10
19:00:43
(*.176.78.229)
파성넷에서 본것 같은데...
제갈량이 남만을 쳐들어갈때 마속에게 "좋은 계책을 다시 베풀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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