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북벌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속은 제갈량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이제부터 전개할 내용은 필자의 추론이 상당부분 개입했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면서 마속전의 기록을 잠깐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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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속전]

 

마량의 아우는 마속(馬謖)이며 자는 유상(幼常)으로 형주 종사로서 선주를 따라 촉에 들어갔고, 면죽 성도령(成都令) 월준태수에 제수되었다. 재주와 기량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군사계책을 논하기를 좋아하니 승상 제갈량이 더욱 그의 기량을 빼어나게 여겼다. 선주가 임종 때에 제갈량에 이르기를

 

“마속은 말이 그 실제를 과장하니, 크게 기용할 수 없소. 그대가 이를 살펴보시오.”

 

라 했다. 제갈량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여 마속을 참군(參軍)으로 삼고 매양 불러서 얘기하기를 밤낮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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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북벌을 함에 있어 중용했던 승상부 속관은 세 명이 있다.

 

① 위연 (독전부 → 전군사) : 실제 전투를 담당하는 장군

② 양의 (장사) : 주로 물자보급을 담당하는 행정보급관

③ 마속 (참군) : 제갈량과 군사전략을 의논하는 작전참모

 

마속전의 기록을 볼 때 1차 북벌을 단행하기 전까지 그는 제갈량과 군사전략을 의논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다섯 차례에 걸친 제갈량 북벌의 군사전략이 어떠했는지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1차 북벌 : 조운과 등지를 기곡으로 보내 조진을 묶어둔 뒤, 기습적으로 기산으로 진출하여 옹주 3군의 항복을 받는다. 기동성을 활용한 일종의 성동격서를 구사했다는 점이 특징.

 

2차 북벌 : 조휴가 석정에서 주방의 계책에 걸려 오나라에게 대패를 당한 틈을 타서 진창을 공격했지만 성을 떨어뜨리는 데 실패하고 철수.

 

3차 북벌 : 중원 진출이라기보다는 4차 북벌을 위한 포석(개인적으로 무도 & 음평을 점령한 것은 기산으로 진출하기 전에 원활한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 있음).

 

4차 북벌 : 기산으로 진출하여 농서를 공격. 노성에서 사마의와 회전을 벌여 승리하고 추격해온 장합을 사살함.

 

5차 북벌 : 야곡으로 진출해서 오장원에 주둔. 단기결전을 노렸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둔전을 꾀하던 와중에 병사.

 

다섯 차례에 걸친 북벌을 가만히 살펴보면 묘한 위화감이 든다. 1차 이후로 화려한 기동작전이 실종됐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제갈량은 기모에 약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러한 비판은 적어도 1차 북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1차 북벌은 기만전술과 기동작전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옹주3군 항복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기책 중의 기책이었다. 만일 제갈량이 북벌에 성공했다면 1차 기산행은 충분히 역대급 군략에 들어갈 만한 행보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1차 북벌 이후에 제갈량의 기동작전은 실종된다.

 

그냥 우직하게 한 점으로 진출하여 한방 싸움을 노리는 전형적인 정공법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가 바로‘마속의 부재’가 아닐까 추정을 해보았다. 즉, 1차 북벌 때 보여줬던 성동격서는 마속이 발안한 전략이 아닐까 의문이 든 것이다. 만일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제갈량이 가정전투에 마속을 보낸 이유가 맞아떨어진다.

 

가정전투는 장합을 무찌른다기보다는 그가 옹주로 건너오지 못하게 길목을 막는 임무였다. 그러는 동안 제갈량은 천수와 남안 일대를 확고한 촉의 영토로 편입하거나 또는 양주의 서막이나 기곡에 있는 조진의 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즉, 1차 북벌의 성공 여부를 쥐고 있는 열쇠는 바로 가정에 위치한 별동대가 얼마나 잘 장합의 군세를 지연하는 데 달려 있었다. 따라서 제갈량은 핵심이 되는 작전지역에 1차 북벌의 전략을 실질적으로 계획한 마속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작전참모’ 마속은 ‘지휘관’으로서는 뛰어나지 못해 실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배했고 읍참마속이라는 고사를 남기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제갈량 측근에서 군사전략을 논의하던 유능한 작전참모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었다.

 

배주로 달린 양양기의 기록을 보면 장완은 마속을 베려는 제갈량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말렸다고 한다.

 

“옛날 초나라가 (재상인) 성득신(成得臣)을 죽이자 진문공이 기뻐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지모 있는 선비를 죽이는 것이 어찌 후회되지 않겠습니까?”

 

필자가 보기에는 그냥 지나칠 대목이 아니다. 마속은 죽는 순간까지도 주변인들로부터 뛰어난 인재로 평가 받고 있었다. 만일 그가 가정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인 작전참모로서 계속 북벌에 종군했다면 역사와는 다른 촉군의 행보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하는 필자의 추정은 그냥 헛된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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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7850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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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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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중달

2013.08.30
00:55:20
(*.77.32.51)
그 1차북벌또한 결과론적으로는 패배했기에 모든 원인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또한 이미 한번 써먹은 기동력의 성동격서이기때문에 다음번에는 충분히 이를염두해도고 철저히 방비했겠지요. 마속을 잃었지만, 마속보다 더 뛰어난 강유를 얻었는데 이후의 북벌이나 강유의 북벌패턴또한 크게 다르지않았습니다. 어찌보면 1차북벌에서의 기동전도 큰틀에서의 전략의 일부였을뿐이지 넓게보면 이후의 북벌과 크게 차이가 없었지요. 기동전이든 장기전이든 중요한 포커스가 보급로및 군량물자의 확보와 수송에 있었으니까요.

맘평화

2013.08.30
01:55:08
(*.129.54.218)
"마속은 제갈량의 절도(節度-명령, 지휘통제)를 어기고 거동(擧動)이 실의(失宜-부적절함)하여 장합에게 대파 당했다."

라고 제갈량 전에 딱 나오네요. 저는 사실 마속이 사실 산에 올라간 것도 병서에 나온 전술적인 판단에서 아예 틀린 것을 아니라고 보는 사람인데

그렇다하더라도 윗 구절에서 지휘통제를 어긴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이고 전술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일부러 전술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자처하지 못한 점에서 확실히 마속이 용병에 능한 장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깊이 있게 용병을 이해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속이 딱 전술레벨에서 써먹기 좋은 인재인 것 같은데 사실 이런 곳에는 충성심이 강하고 무예가 강한자이면서 시킨대로 잘하는(오일, 위연이 적합할 듯)

사람을 기용하거나, 아예 전략(작전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

(뭐 이렇게 보면 저는 제갈량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안갔는 이해가 안됩니다.

가정이 진짜 중요하면 사안을 제처두고 갔어야 하긴 하는데 열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걸 마속에게 맡기고 가정으로 최대한 빨리 제갈량이 갔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차 이후에 기동이 사라진 것은 일단 1차에서 패배한 이후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점

그리고 "곽회는 제갈량이 반드시 북원을 다툴 것이므로 응당 먼저 그곳을 점거해야 된다고 계획했다. 논의하는 자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곽회가 말했다."

라는 점을 보면 제갈량이 기동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곽회의 전술분석이나 정보분석이 탁월했다 생각합니다. (곽회, 장합이 사실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맘평화

2013.08.30
02:01:34
(*.129.54.218)
1차에서 실패한 다음에는 저는 아예 북쪽 이민족 + 오와의 동시타격을 노리는게 최고로 좋은 전략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점이 반영이 안되는 것을 보면....

다른 분께서 설명하시다 중간에 그만 둔 (특히 이민족과 위연) 떡밥이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미백랑

2013.08.30
09:51:03
(*.233.63.81)
가정전투에 제갈량이 직접 가야 됐었는지는 조금 의문인 것이, 제갈량의 본군은 그 후에 조진을 상대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었죠.
가정전투가 그냥 장합만 격파하는 거라면 제갈량이 직접 가는게 마땅한데 전체적인 그림으로 보면 가정전투와는 별개로 제갈량은 뭘 하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마속이 너무 생각보다 일찍 무너진 데다가, 제갈량 본군의 움직임도 굼떠서 그냥 전체적으로 말아먹었죠.
가정전투 자체는 마속이 망쳤지만 1차 북벌을 어그러뜨린 건 제갈량의 실책이 상당부분 차지한다고 봅니다.
막판에 마침표를 잘못 찍어서 문장 전체를 말아먹은 케이스거든요.

맘평화

2013.08.30
12:04:10
(*.129.54.218)
글이 날아가는...ㅠ,.ㅠ

제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제갈량이 뭘하려고 한것을 잘 몰라서인 것 같은데요.

가정을 넘어 안정에서 장안으로 내려오려는 것이였다면 최대한 주력부대가 빨리 가정으로 넘어왔어야 한다는게 제 생각이구요.

옹양주 겸병이였어도 (위수로는 못건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어느 쪽이든 건너는 즉시 배수진이라고 봤기 때문이구요.)

가정만 막으면 예비 지원 다 막고 옹양주쪽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러려면 가정이 일단 제일 중요해지는게 아닌가해서요.

그러려면 열류성쪽에 고상도 있었고 했지만 이쪽을 마속에게 맡겨두고 가정을 확실히 막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진은 사실 조운 때문에

양동작전으로 발이 묶인 것으로 봤고요. 열전마다 내용도 다르고 해서 좀 헷갈리기도 하구요. 의견 감사드리고 지적 좀 부탁 드립니다.

미백랑

2013.08.30
12:49:56
(*.233.63.81)
저도 잘 몰라요. 제갈량이 뭘 보여주기 전에 깨졌기 때문에 ㅋㅋ
한때 삼갤과 삼도에서는 안정은 사실상 포기하고 마속의 별동대가 가정에 주둔하면서 천수로 넘어오는 것을 막고
제갈량은 기산에 주둔하면서 장안에서 농서로 넘어오는 위군을 막으면
천수와 남안 일대가 촉군의 세력권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논리로 제갈량의 의중을 추정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 전략 자체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죠.
너무 전선이 넓은 데 당시 촉군이 거하고 있던 곳은 험안 산악지대라 어느 한쪽에서 전투가 발발하면 쉽사리 구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죠.
실제로 원자도 이 부분을 비판하고 있고요.

맘평화

2013.09.02
07:16:39
(*.129.54.218)
많은 힌트를 주시네요. 한번 꼭 뒤져보고 정리를 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토론 진지하게 시작한 것 얼마되지 않는 것도 잘 아시고 하니..... 부족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세요. 항상 여러분야 좋은 글로 애독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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