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楊字偉君,汝南平輿人也。少好術數。王莽輔政,召為郎,稍遷酒泉都尉。及莽篡位,楊乃變姓名為巫醫,逃匿它界。莽敗,方還鄉里。

 

汝南舊有鴻郤陂 [注一], 成帝時,丞相翟方進奏毀敗之。建武中,太守鄧晨欲修復其功,聞楊曉水脉,召與議之。楊曰:「昔成帝用方進之言 [注二],尋而自夢上天,天帝怒曰:『何故敗我濯龍淵?』是後民失其利,多致飢困。時有謠歌曰:『敗我陂者翟子威,飴我大豆,亨我芋魁 [注三]。反乎覆,陂當復。』昔大禹決江踈河以利天下,明府今興立廢業,富國安民,童謠之言,將有徵於此。誠願以死效力。」晨大恱,因署楊為都水掾,使典其事。楊因高下形埶,起塘四百餘里 [注四],數年乃立。百姓得其便,累歲大稔。

 

初,豪右大姓因緣陂役,競欲辜較在所,楊一無聽,遂共譖楊受取賕賂。晨遂收楊下獄,而械輒自解。獄吏恐,遽白晨。晨驚曰:「果濫矣。太守聞忠信可以感靈,今其效乎!」即夜出楊,遣歸。時天大陰晦,道中若有火光照之,時人異焉。後以病卒。晨於都宮為楊起廟,圖畫形像,百姓思其功績,皆祭祀之。

  

허양(許楊)의 자는 위군(偉君)이고 여남汝南군 평여平輿현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술수術數를 좋아하였다. 왕망(王莽)이 보정(輔政)할 때 불려 낭(郎)이 되었고, 차츰 천임되어 주천(酒泉)군의 도위(都尉)가 되었다. 왕망이 황위를 찬탈하기에 이르자 허양은 곧 성과 이름을 바꾸고 무의(巫醫)가 되어 다른 지역으로 도망쳐 숨어 지냈다. 왕망이 망하자 고향 마을로 되돌아왔다.

 

여남군에는 예부터 홍극피(鴻郤陂, =鴻隙陂)가 있었는데 [注一], 성제(成帝, 前漢의 11대 황제. 재위 기간 BC 33~ BC 7) 때 승상 적방진(翟方進)이 허물어 달라 주달(奏達, 임금께 아룀)하였었다*. 건무 연간(建武, AD 25~ 56) 중에 태수 등신(鄧晨)이 수복시켜 그것을 (다시) 쌓고자 하였는데, 허양이 수맥에 밝다는 것을 듣고 불러 함께 그를 의논하였다.

 

[注一] 陂在今豫州汝陽縣東。

피(陂, 방죽)는 지금의 예주豫州 여양현汝陽縣의 동쪽에 있다.

(집해)

전대흔(錢大昕) : 『한서漢書』에서는 홍극鴻隙이라 썼다. 극隙은 극郤과 같다.

심흠한(沈欽韓) : 피는 여녕부성(汝寧府城)의 동쪽 10리 지점에 회북(淮北)의 여러 물길들과 만나는 곳에 있다.

 

허양이 말하기를 “지난날 성제(成帝)께서 적방진의 말을 수용하시고 [注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하늘에 오르는 꿈을 꾸었는데, 천제께서 노하여 “무슨 까닭으로 나의 탁룡연(濯龍淵)을 무너뜨린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백성들은 그곳에서 나던 이익을 잃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고달퍼지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에 있었던 민간 가요에는 “우리의 방죽을 무너뜨린 적자위(翟子威, 적방진을 말함)가, 우리에게 대두를 밥으로 먹이고, 토란을 국으로 먹게 하는구나 [注三] **. 다시 돌아온다면 방죽을 수복시키리.”라고 하였습니다.

 

[注二] 前書翟方進奏壞鴻郤陂。

전서(前書, 『漢書』를 말함)에 의하면 적방진이 홍극피를 무너뜨릴 것을 상주하였다.

 

[注三] 方進字子威。芋魁,芋根也。前書「飴」作「飯」,「亨」作「羹」。

적방진의 자(字)가 자위(子威)이다. 우괴(芋魁)는 우근(芋根, 토란)이다. 전서(前書, 『漢書』를 말함)에서는 이(飴)를 반(飯)으로, 팽(亨)을 갱(羹)으로 썼다.


 

지난날 성왕 우임금께서 장강과 황하의 물을 터 흐르게 해 천하를 이롭게 한 것처럼***, 태수(明府=太守)께서 지금 폐업(廢業, 홍극피를 무너뜨린 것)을 일으켜 세우시려 하시니 부국안민과 동요에서 나오는 말이 장차 이곳에서 증명될 것입니다. 진실로 온 힘을 다해 도울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등신이 매우 기뻐하며 허양을 해당 관청으로 파임(派任)하여 도수연(都水掾)으로 삼고 그 일을 전담케 하였다. 허양이 높낮이의 형세에 따라 제방 400여 리를 일으켰는데 [注四], 수년 만에 세워졌다. 백성들이 그 편리 덕분에 여러 해 동안 크게 풍년이 들었다.

 

[注四] 塘,堤堰水也。

당(塘)은 제방(둑)의 물이다.

 

당초에 호우대성(豪右大姓, 호족, 명족, 권문세가, 사족 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피역(陂役, 여기서는 방죽을 다시 세우는 일)과 연관되어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고자 다투었는데, 허양이 한 번도 듣질 않자, 끝내 공모하여 허양이 뇌물을 받아 챙겼다고 참소하였다. 등신이 결국 허양을 잡아 하옥시켰는데, 쇠고랑과 형틀이 저절로 풀어져 버렸다****. (이에) 옥리가 두려워하며 급히 등신에게 자백하였다. 등신이 놀라 말하기를, “역시 뜬소문이었구나. 내가(원문에는 태수가 라고 나와 있으나, 당시 태수는 등신 본인) (허양의)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럽기가 신령을 감동시킬 만하다고 들었는데, 지금 그것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곧 밤에 허양을 석방시키고, 돌려보냈다.

 

당시 하늘이 크게 흐리고 어두웠는데, 도중에 화광이 그를 비추고자 있는 듯하니 당시 사람들이 기이하다 여겼다. 후에 병으로 죽었다. 등신이 도궁에 허양을 위하여 묘를 세웠는데*****, 형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백성들이 그의 공적을 사모하여 함께 제사지냈다.

 

 

 

* 自注

* 丞相翟方進奏毀敗之 : 『한서漢書』「적방진전」에는 “鴻隙大陂”라고 나온다. 『한서漢書』에 따르면, 관개(溉灌)와 어별(魚鼈)로 인하여 막대한 이익을 주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홍수가 나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적방진이 어사대부 공광孔光과 함께 시찰을 갔었는데, 땅은 기름지고 좋고, 제방의 손실을 살폈으나 수해로 인한 근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허물도록 상주하였었다. 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위의 해석은 『漢書』의 「적방진전」에 나온 주석을 참고한 것이다.

(漢書) 師古曰:「言田無溉灌,不生秔稻,又無黍稷,但有豆及芋也。豆食者,豆為飯也。羹芋魁者,以芋根為羹也。飯音扶晚反。食音飤。」

 

師古 : 밭이 없는 관개지역이라 메벼가 날 수 없고, 또 기장과 피도 없으며, 오로지 콩과 토란만 있음을 말한 것이다. 豆食이라고 한 것은 콩을 밥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羹芋魁라는 것은 토란을 국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飯의 음은 부(扶)와 만(晚)의 반(反)이다. 食의 음은 사(飤)이다.

 

*** 昔大禹決江踈河以利天下 : 여기서 決江踈河는 각각 決江과 踈河로 나뉜다고 보았다. 또한 통상적으로 우임금이 강과 하에 치수를 한 것을 말할 때에는 강을 장강으로, 하를 황하로 이해하기에 이를 따랐다.

 

**** 而械輒自解 :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여 직역하였다. 이처럼 이해해야 이후 문장과 문맥상 연결이 완만해지기 때문이다.

 

***** 晨於都宮為楊起廟 : 판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애초에 都宮든, 都官이든, 都든, 宮이든 해석이 매끄럽게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냥 都宮을 그대로 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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