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玉者,廣漢雒人也[集解一]。初,有老父不知何出,常漁釣於涪水,因號涪翁[集解二]。乞食人間,見有疾者,時下鍼石,輒應時而效。乃著針經、診脉法傳於世[注一, 集解三]。弟子程高尋求積年,翁乃授之。高亦隱跡不仕。玉少師事高,學方診六微之技,陰陽隱側之術[集解四]。和帝時,為太醫丞,多有效應。帝竒之,仍試令嬖臣美手腕者與女子雜處帷中,使玉各診一手,問所疾苦。玉曰:「左陽右陰,脉有男女,狀若異人。臣疑其故。」帝歎息稱善。

 

玉仁愛不矜,雖貧賤厮養,必盡其心力,而醫療貴人,時或不愈。帝乃令貴人羸服變處,一鍼即差。召玉詰問其狀。對曰:「醫之為言意也。腠理至微 [注二],隨氣用巧,鍼石之閒,豪芒即乖。神存於心手之際,可得解而不可得言也。夫貴者處尊高以臨臣,臣懷怖懾以承之。其為療也,有四難焉:自用意而不任臣,一難也;將身不謹,二難也;骨節不彊,不能使藥,三難也;好逸惡勞,四難也。針有分寸,時有破漏 [注三],重以恐懼之心,加以裁慎之志,臣意且猶不盡,何有於病哉!此其所為不愈也。」帝善其對。年老卒官。

 

곽옥郭玉은 광한廣漢군 낙雒현 사람이다[集解一]. 당초에 늙은 아버지가 있었지만 어느 지방 출신인지 알 수 없으나, 항상 부수涪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옹涪翁이라고 불렀다[集解二]. 사람들 간을 떠돌며 걸식을 하였는데, 병이 든 이가 있는 것을 보면 때때로 돌침鍼石을 놓았고*, 항상 때맞추어 효과가 있었다. 이에 『침경鍼經』과 『진맥법診脉法』을 저술하여 세상에 전해지게 하였다[注一, 集解三]. 제자인 정고程高가 이치를 연구하기를 몇 해 동안이나 하자 부옹은 그에게 전수하여 주었다. 정고 또한 숨어 지내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곽옥은 어려서부터 정고를 스승으로 섬기며, 방진육미方診六微의 기법과 음양은측陰陽隱側의 기예를 배웠다[集解四]. 화제和帝 때 태의승太醫丞이 되었는데, 효험을 낸 적이 많았다. 황제가 그를 기특奇特하게 여겼기 때문에 시험하고자 폐신 중 수완이 좋은 사람에게 휘장 속에 남과 여가 섞여 있도록 하고**, 곽옥에게 각각 한 손씩 진맥하게 하여 질병과 괴로운 바를 물었다***. 곽옥이 “왼쪽 맥은 양맥이고 오른쪽 맥은 음맥이라 남자와 여자의 맥이 함께 있으니, 그 맥상이 서로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신은 그 연유를 괴이하다 여깁니다.”라고 하자, 황제가 감탄하여 훌륭하다 칭찬하였다.

 

곽옥은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오만함이 없었는데, 비록 가난하고 천한 하인이라도 치료함에 있어서 반드시 그 심력心力을 다하였지만, 귀인貴人을 병 치료할 때에는, 때맞추어 낫기도 하였으나 어떤 경우에는 낫지 않기도 하였다. 황제가 이에 귀인에게 낡고 허름한 옷으로 바꿔 입도록 하고 사는 곳도 바꾸도록 하였는데****, 침 한 방에 곧 차도를 보였다. (황제가) 곽옥을 불러 그 정상情狀을 힐문詰問하였는데 대답하여 말하길,

 

“의원은 뜻이라고 말합니다. 살가죽은 지극히 미약하고[注二], 경기經氣를 따라 교묘하게 (침을)사용해야 하며, 침석의 사이가 터럭만큼 어긋난다면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정신은 마음과 손끝에 있으니, 이해할 수는 있어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무릇 귀한 사람은 귀하고 높은 곳에서 신을 맞으시기 때문에, 신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고 그것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그를 치료함에 있어서 네 가지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스스로 뜻을 정하고서 신에게 맡기지 않으니, 첫 번째 어려움입니다.

 

장차 몸을 씀에 있어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니, 두 번째 어려움입니다.

 

관절이 강하지 않아 약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세 번째 어려움입니다.

 

편안함을 좋아하고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니, 네 번째 어려움입니다.

 

침은 분촌이 있고, 때로는 시간을 지켜야 하며[注三]******, 두려워하는 마음이 거듭될수록 삼가고 신중하고자 하는 뜻이 더해져, 신의 뜻 또한 다하지 못하게 되니 어찌 어찌 병에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 때문에 낫지 않는 것입니다.”

 

황제가 그 대답을 훌륭하다 여겼다. 늙어 궁궐에서 죽었다*******.

 

 

[集解一]

혜동惠棟 : 『화양국지華陽國志』에서는, "곽옥의 자는 통직通直이고, 신도新都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集解二]

혜동惠棟 :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에는, "광한에는 부수에서 낚시질을 하는 노옹이 있었는데 스스로를 부옹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다.

 

[注一] 診,候也,音直忍反。

진診은 살펴보는 것이다. 음은 직과 인의 반이다.

[集解三]

혜동惠棟 : 사마정司馬貞은 진에 대해서 "추씨鄒氏는 음이 丈과 忍의 反이라고 하였고, 유씨劉氏는 음이 陳과 忍의 反이라고 하였으며, 사마표司馬彪는 診은 占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集解四]

혜동惠棟 : 『화양국지華陽國志』에 "곽옥은 방술에 밝고, 침을 사용함이 기묘하여 『경방송설經方頌說』을 지었다."고 하였다.

심흠한沈欽韓 : 육미六微는 삼음三陰과 三陽의 맥을 살피는 것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편素問篇」의 육미지대론六微旨大論에서는 "천도天道는 六이고, 六節의 성쇠는 사람과 상응한다."고 하였다.

 

[注二]

腠理,皮膚之閒也。韓子曰,扁鵲見晉桓侯,曰「君有病,在腠理」也。

주리腠理는 살가죽의 틈이다. 한자韓子가 말하길, 「편작이 진晉의 환후桓侯를 보고 말하였다. “그대에게는 지금 살가죽에 병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自注 : 사기의 편작창공열전을 보면 환후는 진晉이 아닌 제齊로 나와 있다. 집해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君有病,在腠理”라는 문구가 제 환후를 만났을 때했던 말이므로, 이곳에서의 오기로 보인다.)

 

[注三]

分寸,淺深之度。破漏,日有衝破者也。

분촌分寸은 깊고 얕은 정도를 말한다. 파루破漏는 날을 똑바로 나누어 깨뜨리는 것이다.

 

 

 

* 自注

 

* 時下鍼石 : 여기서의 鍼石은 다른 판본에서 針石이라고 써져 있다. 침석針石은 그 재질을 알 수 없다. 돌이나 옥으로 만든 석침인지, 아니면 금속으로 만든 침인지 구분이 불가하여 소장중인 후한서 집해 판본에 실려 있는 鍼石을 따라 돌침이라고 하였다.

 

** 仍試令嬖臣美手腕者與女子雜處帷中 : 문맥이 완만하지 않아 별도로 첨언하고자 주를 달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미수완美手腕이라는 신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는 황제가 폐신들 중 수완이 좋은 자에게 휘막을 설치하고 그 안에 남자와 여자를 넣고 섞여 있게 만들라고 시킨 것이다.

 

*** 問所疾苦 : 뒤의 문맥으로 봐서는 의역을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의역을 하면 “진맥한 자들에게 어떤 질고가 있는 가를 물었다.”정도가 될 것이다.

 

**** 羸服變處 : 이 부분을 각각 羸服과 變處로 나누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의상 의역하였다. 羸服은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낡고 허름하며 구멍 뚫리고 헤진 옷을 말하는 것이다.

 

***** 鍼石之閒,豪芒即乖 : 단순하게 보면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직역하면 “침석의 사이가 터럭 만큼인즉, 어그러진다.”가 되는데, 전체적인 의미는 위에서 의역해 놓은 문장과 같다. 침석을 놓을 때, 그 거리(침의 깊이, 위치 등)가 터럭 만큼이라도 차이가 난다면 그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짐을 말하는 것이다.

 

****** 針有分寸, 時有破漏 : 여기서 분촌分寸이란 침을 사용할 때의 방법이나 깊이 정도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破漏는 침을 놓는 시기를 말한다. 적당한 시기, 피해야할 시기 등을 시계(破漏는 보통 물시계를 의미한다.)에 의지하는 까닭에 이러한 문구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 맞추어 대략적으로 의역하였다.

 

******* 年老卒官 : 늙어 죽을 때까지 관직에 있었다는 의미의 관용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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