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王部二十一》

《文皇帝》
《晉書》曰:文皇帝諱昭,字子上,景皇帝之母弟。魏景初三年,封新城鄉侯。正元初,為洛陽典農中郎將。值魏明奢侈之後,帝蠲除苛碎,不奪農時,百姓大悅。轉散騎常侍。大將軍曹爽之伐蜀也,以帝為征蜀將軍,副夏侯玄出駱谷,次于興勢。蜀將王林夜襲帝營,帝堅臥不動。林退,帝謂玄曰:「費祎以據險拒守,進不獲戰,攻之不可,宜亟旋軍,以為后圖。」爽等引還,祎果馳兵趣三嶺,爭險乃得過。還,拜議郎。及誅曹爽,帥眾衛二宮,以功增邑千戶。高貴鄉公之立也,以參定策,進封高都侯,邑二千戶。毌丘儉、文欽之亂,大軍東征,帝兼中領軍,留鎮洛陽。及景帝疾篤,帝自京師省疾,拜衛將軍。景帝崩,天子命帝鎮許昌,尚書傅嘏帥六軍還京師。帝用嘏及鍾會策,自帥軍而還。至洛陽,進位大將軍,加侍中,都督中外諸軍、錄尚書事,輔政,劍履上殿。固辭不受。甘露元年春,加大都督,奏事不名。夏六月,進封高都公,地方七百里,加之九錫,假斧鉞,進號大都督,劍履上殿。又不受。秋八月庚申,加假黃鉞,增封三縣。二年夏六月辛未,鎮東大將軍諸葛誕殺揚州刺史樂琳,以淮南作亂,遣子靚為質於吳以請救,議者請速伐之。帝曰:「誕以毌丘儉輕疾傾覆,今必外連吳寇,此為變大而遲,吾當與四方同力,以全勝制之。」秋七月,奉天子及皇太后東征,征兵青、徐、荊、豫,分取關中游軍,皆會淮北。師次于項城,假廷尉何楨節度,使淮南,宣慰將士,申明逆順,示以誅賞。甲戌,帝進軍丘頭。因命合圍。三年春正月,諸葛誕、文欽等出攻長圍,諸軍逆擊,走之。初,誕、欽內不相協,及至窮蹙,轉相疑貳。會欽計事於誕,忤,誕手刃殺欽。欽子鴦攻誕,不克,逾城降。以為將軍,封侯,使鴦巡城市而呼。帝見城上持弓者不發,謂諸將曰:「可攻矣!」二月乙酉,攻而拔之,斬誕,夷三族。四月,歸于京師,魏帝令改丘頭為武丘,以旌武功。五月,天子以并州太原、上黨、西河、樂平、新興、雁門、司州之河東、平陽八郡,地方七百里,封帝為晉公,加九錫,進位相國,九讓,乃止。景元元年夏四月,天子既以帝三世宰輔,政非已出,情不能安,又慮廢辱,將臨軒召百僚而行放黜。五月戊子夜,使冗從仆射李昭等發甲於凌云臺,召侍中王沉、散騎常侍王業、尚書王經,出懷中黃素詔示之,戒嚴俟旦。沈、業馳告于帝,帝召護軍賈充等為之備。天子知事泄,帥左右攻相府,稱有所討,敢有動者族誅。相府兵將止不敢戰,賈充叱諸將曰:「公畜養汝輩,正為今日耳!」太子舍人成濟抽戈犯蹕,天子崩于車中。帝召百僚謀其故,仆射陳泰不至。帝遣其舅荀顗輿致之,定于曲室,謂曰:「玄伯,天下其如我何?」泰曰:「惟腰斬賈充,征以謝天下。」帝曰:「卿更思其次。」泰曰:「但見其上,不見其次。」於是歸罪成濟而斬之。與公卿議,立燕王宇之子常道鄉公璜為帝。二年秋八月甲寅,天子使太尉高柔授帝相國印綬,司空鄭沖致晉公茅土九錫,固辭。三年夏四月,肅慎來獻楛矢、石弩、弓甲、貂皮等,天子命歸大將軍府。四年夏,帝將伐蜀,徵四方之兵十八萬,使鄧艾自狄道攻姜維於沓中,雍州刺史諸葛緒自祁山軍于武街,絕維歸路,鎮西將軍鍾會帥前將軍李輔、征蜀護軍胡烈等自駱谷襲漢中。秋八月,軍發洛陽,大賚將士,陳師誓眾。將軍鄧敦謂蜀未可討,帝斬以徇。九月,使天水太守王頎攻維營,隴西太守牽弘邀其前,金城太守楊欣趣其後。鐘會分為二隊,入自斜谷,使李輔圍王含於樂城,又使部將易愷攻蔣斌於漢城。會直指陽安,護軍胡烈攻陷關城。姜維聞之,引還,王頎追,敗維於強川。維與張翼、廖化合軍守劍閣,鍾會攻之。冬十月,天子以諸侯獻捷交至,詔加九錫,帝乃受命。十一月,鄧艾帥萬餘人,自陰平逾絕險,至於江由,破蜀將諸葛瞻於綿竹,斬瞻首傳道。進軍雒縣,劉禪降。天子命晉公以相國總百揆,於是上節傳,去侍中、大都督、錄尚書之號焉。咸熙元年春正月乙丑,帝奉天子西征,至于長安。遣護軍賈充持節,督諸軍,據漢中。鍾會遂反於蜀,監軍衛瓘、右將軍胡烈攻會,斬之。丙辰,帝至自長安。三月乙卯,進爵為王,增封并前二十郡。冬十月丙午,天子命中撫軍新昌鄉侯炎為晉世子。二年五月,天子命帝冕十有二旒,建天子旌旗,出警入蹕,乘金根車,駕六馬,備五畤副車,置旄頭雲罕,樂舞八佾,設鐘虡宮懸,位在燕王上。進王妃為王后,世子為太子,王女王孫爵命之號皆如帝者之儀。秋八月辛卯,帝崩于露寢,時年五十五。九月癸酉,葬崇陽陵,謚曰文王。武帝受禪,追尊號曰文皇帝,廟稱太祖。


《황왕부 21》
《문황제》
《진서晉書》 : 문황제文皇帝의 휘는 소昭이고, 자는 자상子上이며, 경황제景皇帝(=사마사)의 동복아우이다. 위魏나라 경초景初 3년(239년), 신성향후新城鄉侯에 봉해졌다. 정시 원년(240년) 초, 낙양전농중랑장洛陽典農中郎將이 되었다. 위 명제가 사치를 행하던 후기에 제帝(=사마소, 문황제)가 자잘하고 번잡한 것들을 없애니 농번기를 놓치지 않게 되어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산기시랑散騎常侍으로 전임되었다. 대장군大將軍 조상曹爽이 촉을 정벌할 때에 제帝(=사마소)가 정촉장군征蜀將軍이 되어 하후현夏侯玄의 부장으로 낙곡駱谷으로 출병하여 흥세興勢에서 주둔하였다.** 촉나라 장수 왕림王林이 제帝(=사마소)의 군영을 야습하였는데, 제帝(=사마소)가 굳게 누워 있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왕림이 물러가자 제帝(=사마소)가 하후현에게 말하였다.

"비의費祎가 험준한 곳을 점거하여 막고 지키고 있음으로써 진군하여도 싸울 방법이 없어 공격이 불가하니 마땅히 빨리 군대를 돌려 후일에 도모해야 합니다."

조상 등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자 비의가 끝까지 병사를 몰아 삼령三嶺까지 이르렀는데, 싸움이 간난한 끝에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 自註
* 帝蠲除苛碎,不奪農時 : 蠲除苛碎의 구절은 기본적으로 苛碎(=자잘하고 번거로움)를 蠲除(=면제하다, 없애다)로 볼 수도 있고, ‘蠲을 除하고 苛를 碎’하다로 볼 수도 있다. 漢典에서는 전자가 예문으로 나온다. 혹은 蠲除/苛碎(그럴 경우 의역해야 하지만, 대강의 의미는 ‘농사일에 밝아 가혹한 조처들을 없애니’ 정도가 될 것이다.)로 구분하여 볼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漢典을 따랐다.

** 興勢 : 《水經注》卷二十七, 《沔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전문 인용은 아니나, 대강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漢水又東逕小成固南,州治大成固,移縣北,故曰小成固城。北百二十里有興勢坂,諸葛亮出洛谷,戍興勢,置烽火樓處,通照漢水。

한수가 또 동쪽 소성고의 남쪽으로 흐르고, 주의 치소는 대성고인데 현의 북쪽으로 옮겼기에 소성고성이라고 부른다. 북쪽 120리에 흥세판이 있는데, 제갈량이 낙곡에서 출병하여 흥세에서 주둔하여~.

*** 堅臥 : 움직이지 않다의 강조형으로 쓰이는 관용구인데, 보통은 "(집 등에서) 꼼짝하지 않고 움직지 않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漢書』 등에서도 그 용례가 보인다. 뒤에 부동과 같은 의미라 이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 위처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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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계속 번역하여 합칠 예정입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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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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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욜롱

2016.02.06
16:19:48
(*.49.22.141)
현재 나무위키 강유 항목을 개편하는 작업에 돌입했는데 강유의 낙곡대전의 종군에 대한 사료가 번역된게 적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왠지 왕기전에 주석으로 기재된 부분이 번역될 것같아서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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