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徽謂亮曰
사마휘(司馬徽)가 제갈량(諸葛亮)에게 말하였다.

「以君才,當訪名師,益加學問。汝南靈山酆公玖熟諳韜略,余嘗過而請教,如蠡測海,盍往求之!」
“군재(君才)로써 응당 명사(名師)를 찾을 것이니 학문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하리라. 여남(汝南)의 영산(靈山) 풍공(酆公) 구(玖)가 육도삼략(六韜三略)을 암송하는 것에 익숙하여 내가 일찍이 지나며 가르침을 청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 표주박으로 바다를 헤아리듯 하였으니, 어찌 가서 가르침을 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引亮至山,拜玖爲師。居期年,不教,奉事惟謹。玖知其虔,始出《三才祕籙》、《兵法陳圖》、《孤虛相旺》諸書,令揣摩研究。百日,玖略審所學皆能致其奧妙,謂曰
제갈량을 데리고 영산에 이르러 풍구에게 절을 하고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1년이 다되도록 가르침이 없었으나 받들어 모시며 오직 행실을 삼가였다. 풍구가 그 공손함을 알아보고 비로소 《삼재비록三才祕籙》, 《병법진도兵法陳圖》, 《고허상왕孤虛相旺》 등의 서(書)를 내어주며 깊이 헤아려 연구토록 하였다. 백일이 지나자 풍구는 간략히 공부한 바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모두 오묘한 경지에 이르러있어 제갈량에게 말하였다.

「方今天運五龍,非有神力者不能濟弱於斯時也。」
“바야흐로 이제 천운의 오룡(五龍)의 신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이 시대에 제약부경(濟弱扶傾, 허약해진 제후들을 바로하고 기울어지는 나라를 바로잡음)할 수 없으리라.”

亮問五龍之說,酆公曰
제갈량이 오룡지설(五龍之說)에 대해서 묻자 풍공이 말하였다.

「秦漢之時,五龍變現,如贏秦爲白,呂秦爲黑,項王爲蒼,漢高爲赤,漢文夢黃龍之瑞,光武膺赤伏之符,故兩漢互尚黃赤。及今漢祚欲終,火土垂絕,雖餘焰未息,復當流之於西,禀金而王。孫堅修漢諸陵,乘土之德,故獅兒創業於江左。與火土爲仇難者,水也。今曹氏已定北方,木繼水而生,其子有青龍之祥,火襲木而王,其後有二火之讖也。」
“진한(秦漢) 때는 오룡이 변화하여 나타나 영진(贏秦, 진시황 전 진나라)이 백(白)이 되었듯이 여진(呂秦, 진시황의 통일 진나라)은 흑(黑)이 되며, 항왕(項王, 초패왕 항우)은 창(蒼)이 되고, 한고(漢高, 한고조(漢高祖))는 적(赤)이 되었으며, 한문(漢文, 한문제(漢文帝))은 황룡의 상서로움을 꿈에서 겪었고, 광무(光武, 광무제(光武帝))는 적복부를 받은 까닭에 양한(兩漢, 전한과 후한)이 황(黃)과 적(赤)을 함께 숭상한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한실(漢室)이 끝나려 함은 화(火, 화기)와 토(土, 토기)가 거의 말라버린 것이라 비록 남은 불꽃이 아직 꺼지진 않았더라도 다시 응당 서쪽으로 흘러 금정을 품부 받아 왕이 될 것이다. 손견(孫堅)은 한실의 종묘를 정비하여 토덕을 상승시키는 덕을 쌓았기에 사자 같은 애(獅兒, 손책)가 강좌(江左)에서 처음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화와 더불어 토가 상극하는 것이 바로 수(水, 수기)다. 지금 조씨(曹氏, 조조)가 이미 북방을 평정하였는데, 목(木, 목기)은 수(水, 수기)를 이어받아서 나니 그 자식은 청룡의 상서로움이 있을 것이고, 화(火, 화기)는 목(木, 목기)를 세습하여 왕이 될 것이니, 그 후에 이대의 화(火, 화기)가 더 있다 끊어질 것이다.”

亮曰
제갈량이 말하였다.

「操爲國賊,權爲竊命,亮當此亂世,則惟退隱躬耕,養志樂道。」
“조조(曹操)는 국적(國賊)이 되었고, 손권(孫權)은 천명을 훔쳤으니(혹은 엿보았으니), 저는 이와 같은 난세를 맞아 오로지 물러나 숨어살며 몸소 밭을 갈며 뜻을 기르고 도를 즐길 것입니다.”

公曰
풍공이 말하였다.

「不然,抱此材器而不拯救斯民,非仁者之心,然出處必以正,劉備漢室之胄,子如一出爲輔,則可成立矣。」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이 쓸모 있는 사람을 품어 이 나라 백성들을 구하지 아니한다면 인자(仁者)의 마음이 아니러니, 이곳을 떠나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 유비(劉備)는 한실의 친척이라 그대는 이미 출사해 본 것처럼 보좌하게 되리니 이루어 세울 수 있을 것이다.”

亮問關、張輩何如. 公曰
제갈량이 관우와 장비 같은 이들은 어떠한지 묻자 풍공이 말하였다.

「羽是解梁老龍,飛是涿州玄豹,雲乃長山巨蟒,竺乃東海壽麋,其後猶有襄陽鳳雛、長沙虎母,西涼駒子,天水小龍,皆子之良佐使也。南郡武當山上有二十七峯,三十二巖,二十四澗,峯最高者曰天柱、紫霄,二峯間有異人曰北極教主,有琅書、金簡、玉册、靈符,皆六甲祕文,五行道法。吾子僅習兵陳,不喻神通,終爲左道所困。」
“관우(關羽)는 해량(解梁, 하동군 해량)의 노룡이고, 장비(張飛)는 탁주(涿州)의 검은 표범이며, 조운(趙雲)은 장산(長山)의 거대한 이무기요, 미축(靡竺)은 동해(東海)의 큰 사슴이며, 그 후에 비록 양양(襄陽)의 봉추(鳳雛), 장사(長沙)의 호모(虎母, 황충)를 얻을 여지가 있고, 서량(西涼)의 망아지(駒子, 마초), 천수(天水)의 작은 용(小龍, ??) 모두가 그대의 좋은 좌사(左使)가 될 것이다. 남군(南郡)의 무당산(武當山)에는 27봉, 32암, 24간이 있으며, 봉우리 중 최고는 천주(天柱), 자소(紫霄)이니 이 두 봉우리 간에서 사는 이인을 북극교주(北極教主)라고 하고, 낭서(琅書, 도교 서적), 금간(金簡, 金簡玉牒, 오행치수법), 옥책(玉册), 영부(靈符) 모두 육갑비문(六甲祕文)이요, 오행도법(五行道法)이라. 내가 그대에게 겨우 병진(兵陳)은 익히도록 하였으나 신통(神通)은 깨우치게 하지 못하였으니 결국은 좌도방문(左道傍門)으로 곤란함을 겪게 될 것이다.”

遂引至武當山拜見。惟令擔柴汲水,採黃精度日。居既久,方授以道術,遣下山行事。至靈山,酆公已北回復命,復尋教主亦不在,峯頭風雷聲轟轟,如千萬人語,始悟神人指點,自負不凡。司馬徽見之,改容曰
마침내 이끌어 무당산에 이르러서 배현하였다. 오직 땔감을 지고 오는 일과 물을 긷고, 황정(黃精)을 채취해 오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곳에서 지낸 지 오래될 무렵, 바야흐로 도술을 전수하여 주고선 하산을 시켰다. 영산에 이르자 풍공은 이미 죽은 뒤여서 다시 교주를 찾으니, 교주 또한 없었다. 봉우리 꼭대기에는 바람과 우레 소리가 굉굉하여 마치 천만인이 말하는 것 같았는데, 비로소 신인(神人)의 지점(指點)을 깨닫고 비범함을 자부하였다. 사마휘(司馬徽)가 그를 보고 얼굴을 고치고선 말하였다.

「真第一流也。」
“진실로 제일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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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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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2019.03.05
18:24:06
(*.66.61.250)
선감이 무엇인가 해서 찾아봤는데 역대신선통감이군요. 제갈량의 스승이라고 하는 풍구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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