獻帝傳曰辛未魏王登壇受禪公卿列侯諸將匈奴單于四夷朝者數萬人陪位燎祭天地五嶽四瀆:「皇帝臣丕敢用玄牡昭告于皇皇后帝漢歷世二十有四踐年四百二十有六四海困窮王綱不立五緯錯行靈祥並見推術數者慮之古道咸以為天之歷數運終茲世凡諸嘉祥民神之意比昭有漢數終之極魏家受命之符漢主以神器宜授於臣憲章有虞致位于丕丕震畏天命雖休勿休羣公庶尹六事之人外及將士洎于蠻夷君長僉曰:『天命不可以辭拒神器不可以久曠羣臣不可以無主萬機不可以無統。』丕祇承皇象敢不欽承卜之守龜兆有大橫筮之三易兆有革兆謹擇元日與羣寮登壇受帝璽綬告類于爾大神唯爾有禪尚饗永吉兆民之望祚于有魏世享。」遂制詔三公:「 上古之始有君也必崇恩化以美風俗然百姓順教而刑辟厝焉今朕承帝王之緒其以延康元年為黃初元年議改正朔易服色殊徽號同律度量承土行大赦天下自殊死以下諸不當得赦皆赦除之。」 

 

헌제전(獻帝傳)에 이르기를,

신묘년에 위왕이 단에 올라 선양을 받을 때공경과 열후제장과 흉노의 선우네 오랑캐 사신 등 수 만인이 배위(陪位=배석陪席)하였는데천지와 오악(五嶽)(주석 1)사독(四瀆)(주석 2)에 요제(燎祭)(주석 3)를 올리며 말하길,

 

황제와 신 조비가 감히 검은 소를 제물로 하여 황황후제께 소고(昭告)하옵니다.(주석 4) ()이 20하고도 4세를 지내었는데, 420하고도6년의 세월을 지내와 사해(四海)는 곤궁하고왕강(王綱)은 제대로 서지 못하며오위(五緯)는 착행(錯行)하였으니영상(靈祥)은 서로 마주하였기에추술하여 운수를 뽑아 고도(古道)로써 그를 고려하여보니 모두 하늘의 역수(歷數)와 운이 이 대에 끝났다고 여겨지는 것이무릇 모든 징조와 백성과 신의 뜻이 비유컨대 한실(漢室)의 운수가 종극에 있다고 나타나 있으니 위가(魏家)가 하늘의 뜻을 받들고자 합니다한주(漢主=헌제)께서 신기(神器)로써 신에게 마땅히 내리셨으니 유우(有虞=제순)의 헌장을 따라 조비에게 제위에 오르도록 하였습니다조비는 천명을 두려워하여 비록 편안하다 하더라도 편안치 않다 하였습니다.(주석 5) 뭇 제후들과 서윤(庶尹), 육사(六事)의 사람들외급(外及장사(將士), 만이(蠻夷)군장에게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천명은 절대 사양할 수 있는 바가 아니고신기는 절대 비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며군신은 절대 주인이 없을 수 없으며만기(萬機)에는 일정한 법통이 없을 수 없다.”(주석 6)라고 하였다조비에게 황상(주석 7)께서 공손히 승계하니감히 삼가 받들지 아니할 수 없었다수구(守龜=)(주석 8)로 점을 쳐 대횡(大橫가로로 크게 갈라진 무늬)의 조짐이 있으면 삼역(三易)의 점을 쳐서 큰 조짐이 있다 점쳐지면 원일(元日=길일)을 삼가 택하고군료들과 단에 올라 황제의 새수(璽綬)를 받들며이 나라의 대신(大神)에 고하였다그대에게 선양을 받으니 상향(尙饗)하시어 길함을 영원토록 하시고억조 만민이 바라는 대로 위가 세세도록 누림을 받길 바라나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삼공에게 조서를 내리며 상고지시(上古之始)에 임금이 있어반드시 미풍양속(美風良俗)으로써 은화(恩化)시킴을 높게 하였느니그러한 연으로 백성이 가르침에 따르게 하고형륙(刑辟)은 그만두라오늘 짐이 제왕의 업을 계승하였기에그 연강(延康원년을 황초(黃初원년으로 삼고논의하여 정삭(正朔)을 고치고복색을 바꾸며휘호(徽號)를 달리 하고도량(度量)을 법률과 같게 하여토행(土行)을 계승하며,천하에 대사면을 시행하라주사(殊死=참수형)이하로 부터는 모두 사면할 수 없음이나모두 사면토록 하라.”라고 하였다.

 

魏氏春秋曰帝升壇禮畢顧謂羣臣曰:「禹之事吾知之矣。」

 

위씨한추(魏氏春秋)에 이르길,

황제가 승단(升壇)에서 예필(禮畢)하고돌아보며 군신들에게 말하기를 제순과 제우의 고사는 짐도 알고 있노라.”고 하였다.

 

干竇搜神記曰宋大夫邢史子臣明於天道周敬王之三十七年景公問曰:「天道其何祥?」對曰:「後五年五月丁亥臣將死死後五年五月丁卯吳將亡亡後五年君將終終後四百年邾王天下。」俄而皆如其言所云邾王天下者謂魏之興也曹姓魏亦曹姓皆邾之後其年數則錯未知邢史失其數邪將年代久遠注記者傳而有謬也

 

간보(干竇)의 수신기(搜神記)에 이르길,

송나라 대부 형사자신(邢史子臣)은 천도에 밝아주 경왕(敬王)의 37년에 경공이 물어 말하길, “천도는 어떠한가?”하니대답하여 말하길 “5년 후 5월 정해에신이 장차 죽을 것입니다죽은 지 5년 이후, 5월 정묘에 오나라가 장차 망할 것입니다망한 5년 이후에 군께서 끝이실 겁니다.끝나신 400년 이후에 주왕(邾王)의 천하입니다.”하였다잠시 후 모두 그 말을 그러하다 여겼다주왕의 천하라는 것은 위()의 흥함을 일러 이른 바이다()는 조씨 성으로위 또한 조씨 성이다모두 주()의 이후이다그 세월을 셈한 즉 어긋남이 있으나미처 형사(邢史)가 그 운수를 놓친 것은장차 년대가 구원(久遠)하니 알지 못하였거나주기자(注記者)가 전하였으나 착오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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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 五嶽은 유향이 지은 說苑에 따르면동악에 태산(泰山), 남악에 곽산(霍山), 서악에 화산(華山), 북악에 상산(常山), 중악에 숭고산(嵩高山)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또한 說苑에 따르면 당대에는 이 오악을 삼공(三公)처럼 여겼다고 한다.

 

주석 2 : 四瀆은 說苑에 따르면장강(長江), 황하(黃河), 회수(淮水), 제수(濟水)를 이른다고 한다또한 說苑에 따르면 당대에는 이 사독을 제후처럼 여겼다고 한다.

 

주석 3 : 는 나뭇단을 쌓아 물품을 태우는 모양으로물품 혹은 나뭇단을 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주석 4 : 敢用玄牡昭告于皇皇后帝詩經 탕편에 나오는 말이며논어 요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皇皇后帝는 皇祖后稷과 짝을 이루며황황후제는 보통 위대한 천제 혹은 상제를 칭하는 말이다.

 

주석 5 : 雖休勿休은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서 그 뜻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여기서는 비록 편안하다 할지라도 편안치 않다 하다.”로 번역하였으나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석 6 : 萬機不可以無統군장들이 말을 하는 대목은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만기와 무통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부분이다.이곳에서는 일단 일정한 법통이라 하였으나시각에 따라서 정통성” 혹은 통치의 기틀” 등등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다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석 7 : 丕祇承皇象이 부분에서 황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중국인명사전에 나온 오나라의 명필인 황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아니면 통념상 황제로 받아들일 것인지 하는 문제인데문맥상 오나라 황상으로 하면 전반적인 해석에 문제가 되어 일단 황제로 보았다다른 해석으로는 조비에게 황제가 상을 기승하니가 있는데 문맥상으로는 이것이 보다 적합하다 싶으나 일단은 상기처럼 번역하였다.

 

주석 8 : 는 큰 거북이다寶龜라고도 하고 元龜라고도 하고 守龜라고도 하였다자잘한 일반 거북들과는 그 품격이 전혀 다르다옛날에 오직 천자와 제후만이 이 큰 거북을 둘 수 있었다. (출전논어집주박헌순 역한길사, 2008

 

대귀는 1척 2촌이니이른바 나라의 수귀(큰 거북)라는 것이니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일정한 공물로 삼지 않고 만약 우연히 얻으면 위에 바쳐 올리게 하는 것이다납석이라고 말한 것은 아랫사람이 위에 올린다는 말이니그 일을 중히 한 것이다.

(출전서경집전 성백효전통문화연구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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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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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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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8.01
14:10:35
(*.0.203.41)
아차차, 역주 부분이 빠져있었군요. 죄송합니다. ㅜㅠ 지금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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