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해를 제공해주셨기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짤막한 「동화전董和傳」을 손댔습니다.

※ 어떻게 배열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그냥 대충해 놓았습니다.

※ 주석에 들어있는 집해 내용의 경우 기존의 문장과 같이 번역하였으나, 따로 집해라는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 그릇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십시오. 환영합니다.

 

<원문>

董和字幼宰,南郡枝江人也。

동화董和의 자字는 유재幼宰이고, 남군南郡 지강枝江현 사람이다.

 

<집해>

郡國志 : 荊州南郡枝江

一統志 : 枝江故城 今湖北荊州府枝江縣東

謝鍾英曰 當在今松滋縣 北當陽縣南

劉家立曰 距枝江縣有鎭曰董市 今尙題曰漢董幼宰故里

『군국지郡國志』 : 형주荊州 남군南郡 지강현枝江

일통지一統志』 : 지강枝江의 옛 성은 (혹은 지강枝江은 옛 성으로) 지금의 호북湖北 형주부荊州府 지강현枝江縣 동쪽이다.

사종영謝鍾英이 말하길, “지금의 송자현松滋縣에 해당하고, 북쪽으로는 양현남陽縣南(양현 남쪽)과 맞닿는다.”고 하였다.

유가립劉家立이 말하길, “지강현枝江縣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진鎭을 동시董市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적기를 한漢 동유재董幼宰의 옛 마을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원문>

其先本巴郡江州人。

그 선조는 본디 파군巴郡 강주江州 사람이다.

 

<집해>

巴郡治江州見劉璋傳

파군巴郡은 강주江州에서 다스렸는데 유장전劉璋傳에서 보인다.

 

<원문>

漢末,和率宗族西遷,

한말漢末에 동화가 종족宗族을 이끌고 서쪽으로 옮기니

 

<집해>

沈家本曰 此文疑有脫誤 若由巴郡 是東遷 非西遷也。 且和旣遷南郡 又安得仕於益州牧劉璋哉。 疑本云巴郡江州人也 其先本南郡枝江人於下文方合。

弼按解作由南郡西遷 亦可通。

심가본沈家本이 말하길, “이 문장은 탈오脫誤가 있음이 의심스럽다. 만약 파군으로부터 본다면 동쪽으로 옮겨간 것이 맞는 것이지, 서쪽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다. 또한 동화가 이미 남군南郡에서 옮겨갔다고 하는데 어찌 익주목益州牧 유장劉璋에게 벼슬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의문스러운 것은 본전에서 이르는 「巴郡江州人」인데, 하문下文에서 그 선조가 본디 남군南郡 지강枝江현 사람이라고 하면 비소로 합치된다.”라고 하였다.

노필盧弼이 집해集解를 지으며 살피건대, 남군南郡으로 말미암으면 서쪽으로 옮겨갔다는 것 또한 가히 통한다.


<원문>

益州牧劉璋以為牛鞞、[一] 江原長、

익주목益州牧 유장劉璋이 우비牛鞞[一]·강원장江原長·

 

[一] 音髀。 음은 비髀이다.

 

<집해>

郡國志 益州犍爲郡牛鞞 蜀郡江原一統志 牛鞞故城 今成都府簡州東 江原故城 今成都府重慶州東南

『군국지郡國志』 : 익주益州 건위군犍爲郡 우비牛鞞, 촉군蜀郡 강원江原

『일통지一統志』 : 우비牛鞞의 옛 성은(혹은 우비牛鞞는 옛 성으로), 지금의 성도부成都府와 간주簡州(혹은 성도부成都府 간주簡州)의 동쪽이다. 강원江原의 옛 성은(혹은 강원江原은 옛 성으로), 지금의 성도부成都府와 중경주重慶州(혹은 성도부成都府 중경주重慶州)의 동남東南이다.

 

<원문>

成都令。蜀土富實,

성도령成都令으로 삼았다. 촉蜀의 땅은 풍부하고 실했기에

 

<집해>

毛本 實作貴。

모본毛本에서는 실實을 귀貴라 썼다.

 

<원문>

時俗奢侈,貨殖之家,侯服玉食,婚姻葬送,傾家竭產。和躬率以儉,惡衣蔬食,防遏踰僭,為之軌制,所在皆移風變善,畏而不犯。然縣界豪彊憚和嚴法,說璋轉和為巴東屬國都尉。

당시 풍속이 사치스러워, 화식貨殖하는 가문은 제후의 복식과 맛좋고 좋은 음식을 먹었으며, 혼인婚姻과 장송葬送(自注 : =장례 및 장례절차)이 집을 기울게 하여 가산을 탕진할 정도였다. 동화는 스스로 검소함을 솔선하여 질 나쁜 옷을 입고, 채식을 하였으며, 주제 넘는 행동을 막고, 도리(自注 : 혹은 규범)에 따라 제도하니, 머무는 곳이 모두 풍속이 바뀌어 좋게 변하여 경외하여 그릇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縣 내 호족이 동화의 엄중한 법을 매우 까다롭게 여겼으므로 유장에게 유세하여 동화를 전임시켜 파동속국도위巴東屬國都尉로 삼았다.

 

<집해>

巴東屬國 見後主傳 延熙十一年 涪陵屬國。

注吳增僅曰 建安六年 劉璋分巴郡 巴東屬國涪陵。 建安末 先主改屬國爲涪陵郡。

파동속국巴東屬國은 후주전後主傳의 연희延熙 11년 부릉속국涪陵屬國으로 보인다.

오증근吳增僅이 주해서 말하길, “건안建安 6년 유장劉璋이 파군巴郡을 나누어 파의 동쪽 부릉涪陵을 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건안말建安末 선주先主가 나라에 속한 것을 고쳐 부릉군涪陵郡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원문>

吏民老弱相攜乞留和者數千人,璋聽留二年,還遷益州太守,其清約如前。與蠻夷從事,務推誠心,南土愛而信之。

관리와 백성, 노약자 서로가 잇닿아 동화가 머물길 비니, 그 수가 수천 인數千人이라 유장이 청을 받아들여 2년간 더 머무르게 하였고, 돌아와서는 익주태수로 천임遷任하니, 그 청렴함과 검약함은 전과 같았다. 만이蠻夷와도 더불어 일을 하면서 성심으로 헤아리고 힘쓰니 남토南土가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였다.

 


先主定蜀,徵和為掌軍中郎將,

선주先主가 촉蜀을 평정하고, 동화를 징벽하여 장군중랑장掌軍中郎將으로 삼아,

 

<집해>

掌軍中郞將一人 蜀所置。

장군중랑장掌軍中郞將은 1인으로 촉蜀이 둔 것이다.

 

<원문>

與軍師將軍諸葛亮並署左將軍大司馬府事,

군사장군軍師將軍 제갈량諸葛亮과 더불어 좌장군左將軍 대사마부大司馬府의 관청을 아우르며 일하였는데,

 

<집해>

胡三省曰 署府事者 總錄軍府事也.

何焯曰 董和並署 李嚴並託 皆所慰蜀士大夫之心 特幼宰端良 正方傾邪耳. 若使黃公衡 不因喪敗隔絶 則受遺當屬 斯人不傷 昭烈之明矣.

호삼성胡三省이 말하길, “서부署府의 일이란, 군부軍府의 일을 총록總錄한 것이다.”고 하였다.

하작何焯이 말하길, “동화가 관청을 아우를 때, 이엄에게 함께 부탁받았는데 대개가 촉 사대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었는데, 특별하게도 유재幼宰(自注 : 동화의 字)의 단정하고 선량함이 정당한 방법으로 부정한 것들을 기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황공형黃公衡(自注 : =황권)이 연락이 두절되어 패하고 잃지 않아, 남겨질 것을 명받아 속屬을 담당하도록 하였다면(自注 : 동화의 직분) 이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하여 소열제의 슬기로움이라 하였을 것이다.”고 하였다.

 

<원문>

獻可替否,共為歡交。自和居官食祿,外牧殊域,內幹機衡,

(임금을 받들어) 옳은 것은 권하고, 옳지 않은 것은 하지 않도록 간언하며, (自注 : 제갈량과)함께 즐겁게 사귀게 되었다. 동화가 관리로 있으면서 녹을 먹은 이래, 밖으로는 멀리 떨어진 곳의 목牧이 되고, 안으로는 중추가 되어 균형을 잡으며(自注 : 집해를 반영하여 해석하면 “안으로는 파벌들의 균형을 관리하다”가 되는데 문의상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겨짐),

 

<집해>

幹疑作斡。

은 간 쓴 것이라고 의심된다.

 

<원문>

二十餘年,死之日家無儋石之財。亮後為丞相,教與羣下曰:「夫參署者,集衆思廣忠益也。

20여 년을 지냈지만, (그가)죽었던 날, 집에는 쌀 한두 섬의 재산조차도 없었다. 제갈양이 후에 승상이 되었을 때, 아랫사람들을 훈계하며 말했다.

 

“무릇 관署(自注 : 여기서는 官과 같은 의미)에 몸을 담고 있는 자라면, 뭇사람들의 생각을 모아(自注 : 중론을 모아) 충익忠益을 넓히도록 하라.

 

<집해>

胡三省曰 參署謂所行之事 參其同異署而行之也。

호삼성胡三省이 말하길, “참서參署는 관소에서 일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이 다른 관청과 함께 참여하면서 그 일을 행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自注 : 이 부분은 잘못 끊어 읽은 것인지 매끄럽지 못한데, 개인적으로는 參을 따로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문>

若遠小嫌,難相違覆,曠闕損矣。

만약 조금이라도 싫어해서 멀어지게 되고, 서로를 어려워하며 (서로를)달리함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에 손실을 입히는 것이리라.

 

<집해>

胡三省曰 違異也。 覆審也。 難於違異 難於覆審 則事有曠闕損矣。 遠 于願翻。

호삼성胡三省이 말하길, “위違는 이異이고, 복覆은 심審이다. 위이違異하여서 어렵고, 복심覆審하기보다 어렵다면 그 일이 국가에 손실을 입힐 것이다. 원遠은 원願이 변한 것이다.(自注 : 遠于願翻과 같은 문장(例 : ‘度,徒洛翻’, ‘敗,補邁翻’, ‘近,其靳翻’)은 『호삼성주 자치통감』에서 자주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 翻을 뭐라 봐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아서 일단 “변하다”로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違覆而得中,猶弃弊蹻而獲珠玉。

달리하는 것이 속에서도 알맞다고 생각된다면, 해진 신발을 버리고서 주옥을 얻는 것과 같이 한다.

 

<집해>

胡三省曰 蹻訖約翻屐也。草履也。

호삼성胡三省이 말하길, “교蹻는 約이 변한 것을 이르는 것으로, 신발屐이다. 초목으로 된 신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然人心苦不能盡,惟徐元直處茲不惑,又董幼宰參署七年,事有不至,至于十反,來相啟告。

그러함이나 사람의 마음이 괴로우면 다 할 수 없으니, 오직 서원직徐元直(自注 : 서서徐庶)만은 처신함이 이처럼 미혹됨이 없었고, 또한 동유재董幼宰는 7년 동안이나 참서參署하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있다면 10번을 돌이켜서라도 이루어지게 하고자, 와서 서로 상담하고 지적하였다.

 

<집해>

胡三省曰 此所謂相違覆也。

호삼성胡三省이 말하길, “이는 서로 위복違覆함을 이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苟能慕元直之十一,幼宰之殷勤,有忠於國,則亮可少過矣。」又曰:「昔初交州平,

진실로 원직元直의 10분의 1과 유재幼宰의 우뚝하고 근면함을 따를 수 있다면, 나라에는 충성하는 것인 즉, 나의 과실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또 말하길,

 

“지난날 당초 최주평崔州平과 사귈 때,

 

<집해>

胡三省曰 亮躬耕隴畝 與崔州平徐庶等友善。

호삼성胡三省이 말하길, “제갈량諸葛亮 자신이 농무隴畝에서 밭을 갈 때, 최주평崔州平·서서徐庶 등과 더불어 우애友愛가 좋았다.”라고 하였다.

 

<원문>

屢聞得失,後交元直,勤見啟誨,前參事於幼宰,每言則盡,後從事於偉度,數有諫止;雖恣性鄙暗,不能悉納,然與此四子終始好合,亦足以明其不疑於直言也。」其追思和如此。[二]

누차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지적받았고, 후에 원직元直과 사귈 때 부지런히 만나며 가르침을 받았으며, 전날 유재幼宰와 정사에 참여할 때에는 매번 이야기하면 전부 말하였고(自注 : 혹은 진력을 다하였고), 후에 위도偉度(自注 : 호제胡濟)가 종사하였을 때에는 수차례 간언하여 말림을 받은 것이 있었다. 비록 마음대로 하는 성품이라 비루하고 어두워서, 모두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더라도 이 네 사람과는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 좋게 만났으며, 또한 (그들이)족히 명석하였기에 그들의 직언을 의심치 않았다.”라고 하였다.

 

그의 동화를 추사追思함이 이와 같았다. [二]

 

<집해>

或曰 和傳末無子 允自有傳之語 何也。

혹자가 말하길, “동화전董和傳의 말미에 자식의 이야기가 없고, 동윤이 몸소 전傳을 가지고 있다는대 어찌된 것인가?”라고 하였다.

 

 

[二] 偉度者,위도偉度는

 

趙一清曰 此注脫書名

조일청趙一清이 말하길, “이 주석은 서명으로 뺐다.”고 하였다.

 

姓胡,名濟,義陽人。성은 호胡씨이고, 이름은 제濟이며 의양義陽 사람이다.

 

義陽見魏志明紀景初元年

의양義陽은 위지魏志 명기明紀 경초景初 원년에 보인다.

 

為亮主簿,제갈량諸葛亮의 주부主簿가 되어

 

此與姜維傳之鎭西大將軍胡濟 或別爲一人

이는 강유전姜維傳의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호제胡濟와 혹 별도의 1인이라 여겨진다.

 

有忠盡之效,故見襃述。亮卒,為中典軍,統諸軍,封成陽亭侯,遷中監軍前將軍,督漢中,假節領兖州刺史,至右驃騎將軍。濟弟博,歷長水校尉尚書。

충성을 다한 것이 본받을 점이 있는 까닭에 기림을 나타내고자 서술하였다.

 

제갈량이 죽고 중전군中典軍이 되어 제군諸軍을 통솔하였으며 성양정후成陽亭侯로 봉해졌고, 중감군전장군中監軍前將軍 독한중督漢中 가절假節 령領 연주자사兖州刺史에 천임遷任되었으며, 우표기장군右驃騎將軍에까지 이르렀다. 호제胡濟의 아우 호박胡博은 장수교위상서長水校尉尚書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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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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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10.05
21:50:10
(*.166.245.166)
헉 이걸 pdf를 보시고 처음부터 번역하신건가요? ㄷㄷㄷ 대단하십니다! 전 인물 목차 찾아서 가기도 힘들더군요 ㅜㅠ 그런데 幼宰 가 위에는 유상이라 되어있고 중간에는 유재라 되어있는데 어느것이 맞는것이지요?

이 글은 곧 삼국지집해 게시판으로 복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마휘

2013.10.05
21:59:50
(*.234.26.150)
에고, 宰가 재상이라는 뜻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재"라고 치고 한자를 찾으면서도 "상"이라고 썼네요.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원문이야 한천초려본하고 집해하고 대조만 해봐도 되는 부분이고(덕분에 고칠 부분이 거의 없죠), 집해 부분이야 치면 되는 건데 이게 번역만큼이나 큰 일이더군요.
집해를 번역하신 분들이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구라뱅뱅

2013.10.07
09:41:20
(*.49.168.253)
드리자마자 바로 결과물이 나옴에 감사드립니다. ^^

venne

2013.10.15
14:23:02
(*.36.142.229)
위의 모개와 오버랩이 되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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