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皇后父大將軍竇武援立靈帝,初秉機政,朝議欲加封爵。植雖布衣,以武素有名譽,乃獻書以規之曰:「植聞嫠有不恤緯之事,[注二] 漆室有倚楹之戚,[注三] 

당시 황후의 부친 대장군 두무(竇武)가 영제를 원립(援立)하였는데 처음 기정(機政)*을 잡고 조정에서 의논하여 봉작을 더하고자 하였다. 노식이 비록 벼슬이 없는 이나 두무가 본래 명예(名譽)가 있었기에 글을 올려 바로잡기 위해 말하였다.

 

「제가 과부도 씨줄이 모자람을 걱정하지 않은 일이 있었음과[注二], 칠실(漆室)도 기둥에 기대어 근심함이 있었음[注三], 


[注二] 左傳曰,范獻子曰:「人亦有言,嫠不恤其緯而憂宗周之隕,為將及焉。」

杜預注曰:「嫠,寡婦也。織者常苦緯少,寡婦所冝憂也。」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이르길 “범헌자(范獻子)가 말하길 ‘사람들 또한 말하길 과부가 자기가 짜던 길쌈을 걱정 하지 않고서 주나라가 망하는 것을 근심하였다 하였으니 장차 이를 이름이라.”고 하였다.

두예주(杜預注)에 이르길 “리(嫠)란 과부이다. 짠다는 것은 씨줄이 적어 항상 근심하는 일이라, 과부가 마땅히 근심해야 할 바이다.”라고 하였다.

 

[注三] 琴操曰:「魯漆室女倚柱悲吟而嘯,鄰人見其心之不樂也,進而問之曰:『有淫心欲嫁之念耶,何吟之悲?』漆室女曰:『嗟乎!嗟乎!子無志,不知人之甚也。昔者楚人得罪於其君,走逃吾東家,馬逸,蹈吾園葵,使吾終年不懨菜;吾西鄰人失羊不還,請吾兄追之,霧濁水出,使吾兄溺死,終身無兄。政之所致也。吾憂國傷人,心悲而嘯,豈欲嫁哉!』自傷懷結而為人所疑,於是褰裳入山林之中,見女貞之木,喟然歎息,援琴而弦歌以女貞之辭,自經而死。」

금조에 이르기를 「노나라에 칠실이라는 여자가 기둥에 기대어 구슬피 한탄하고 울부짖으니, 이웃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불편하였다. 나아가서 그를 물어 말하기를 “음심이 있어 시집을 가고 싶은 생각 때문인가? 어찌 우는 소리가 그리도 슬픈가?” 칠실녀가 말하길 “슬프다, 슬퍼! 그대는 뜻이 없어 남의 심각함을 모르는구나. 지난날, 초나라 사람이 그 임금에게 죄를 얻어 우리 동쪽 집으로 도망와, 말이 뛰쳐나가는 것을 막고자 우리 집 화원의 해바라기들을 밟아버렸기에, 나로 하여금 해가 끝나도록 편히 나물캐지 못하게 했다. 우리 서쪽 이웃 사람은 양을 잃어버렸는데 돌아오지 않으니, 우리 오빠에게 그것을 쫓아가 줄 것을 청하였는지라, 안개가 혼탁하게 물에서 나와 우리 오빠로 하여금 익사토록 하였으니, 종신토록 오빠가 없음이라. 정사의 소치라. 내가 나라를 근심하여 남을 해치니 마음이 슬퍼 울부짖는지라 어찌 혼인을 하고자 함이겠는가!”하였다. 스스로 상처입으나 굳게 품고서 남을 위하여 안정시키고자한 바, 이에 치마를 걷고 산림 속으로 들어가 당광나무를 보고 한숨을 쉬고 크게 탄식하며, 거문고를 안고서 현을 튕겨 여정(女貞)의 사연을 노래를 부르고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다.」 라고 하였다.


(集解) 劉攽曰 注以女貞之辭 案文多(一)以{平}字。*

유반劉攽이 말하길 "주석은 여정지사女貞之辭(여정의 사연)인데 문헌을 살펴보니 대체로 그 자구를 하나같이 같게 정리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 自注

* 기정(機政) :

* 案文多(一)以{平}字 : 후한서 집해에서는 案文多以字라고 써 놓았는데, 이는 탈루와 오기로 보인다. 실제 저런 용례도 찾기 힘들 뿐더러, 문장이 완만하지 못하다. 또한 유반劉攽의 『동한간오東漢刊誤』를 보면 案文多一平字로 나와 있으므로 해석은 『동한간오東漢刊誤』에 실린 것대로 하였다.


憂深思遠,君子之情。[注四] 書陳『謀及庶人』,[注五] 詩詠『詢于芻蕘』。[注六] 植誦先王之書乆矣,敢愛其瞽言哉![注七] 今足下之於漢朝,猶旦、奭之在周室,建立聖主,四海有繫。論者以為吾子之功,於斯為重。天下聚目而視,攢耳而聽,[注八] 謂準之前事,將有景風之祚。[注九] 尋春秋之義,王后無嗣,擇立親長,年均以德,德均則決之卜筮 [注十] 

그리고 깊이 근심하고 멀리 생각하는 것은 군자의 정이라 들었습니다.[注四] 서경(書經)에서 『백성들에게 미치어 물어보라.』[注五]라고 하였고, 시경에서 『목동과 나무꾼에게 물어보라.』고 읊었습니다. [注六] 제가 선왕의 글을 암송한지 오래되었으니 구태여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을 사랑하겠습니까? [注七] 

 

지금 그대는 한나라 조정에 있어서 주실에 있었던 단(旦, 주공 단)과 석(奭, 소공 석)과 같으니 성상(聖主)을 건립하여 사해(四海)로 이어짐이 있습니다. 논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의 공이라 여기는 것이,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천하의 이목이 모이면 보게 되고, 귀가 모이면 듣게 되니[注八] 전사(前事)에 준하여 이르길 장차 경풍(景風)의 징조가 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注九] 춘추(春秋)의 의를 찾아보면, 왕후가 이어지질 후손이 없을 때, 종친의 어른을 택립(擇立)하여, 나이가 같으면 덕으로써 하고, 덕이 같은 즉 점을 쳐서 결정한다 하였습니다. [注十] 


[注四] 詩序曰:「憂深思遠,儉而用禮,乃有堯之遺風焉。」夫士立爭友,義貴切磋。

孝經曰:「士有爭友,身不陷於不義。」詩云:「如切如磋。」

鄭玄注云:「骨曰切,象曰磋。言友之相規誡,如骨象之見切磋。」

『시경(詩經)』의 서문에 이르기를* “깊이 근심하고, 멀리 생각하여 수수하나 예로 쓰니 이는 요임금이 남긴 유풍이 있음이라.”하였다. 무릇 선비가 쟁우(爭友)*에 섬은 그 뜻을 귀히 절차(切磋)함이다.

『효경』에 이르기를 “선비에게 잘못함을 책망하여 주는 친우가 있다면, 그는 불의함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하였으니, 이는 『시』(詩經)에서 “칼로 자른바 같고, 잘 갈아 놓은 것과 같다.”이른 것이요, 정현주(鄭玄注)가 “뼈를 다루는 것을 절(切)이라 하고, 상아를 다루는 것을 차(磋)라 한다. 벗에게 서로 규계(規誡)를 말하여 줌은, 골상(骨象)의 절차(切磋)를 보여줌과 같다.”라고 이른 것이다.

 

自注

* 시경의 서문에 이르기를 : 제가 알기로는 『시경』 당풍으로 알고 있는데 시서라고 나와 있으니 시경의 서문인건지 아니면 시서라는 별도의 책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은 당풍의 서문일 수도 있겠네요.

* 쟁우(爭友) : 친구(親舊)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극력(極力) 충고(忠告)하는 벗 (출처 : 네이버 한자사전)

* 선비에게 ~ 않을 것이다 : 『효경』에서는 “士有爭友, 則身不離於令名”이라고 나와 있는데, 여기서는 “父有爭子, 則身不陷於不義”의 다음 구절을 따와 義를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임.

 

[注五] 尚書洪範曰「謀及卿士,謀及庶人」也。

일찍이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이르기를 “경과 사에게 미치어 물어보고, 백성들에게 미치어 물어보라.”라고 한 것이다.

 

[注六] 詩大雅曰:「先人有言,詢于芻蕘。」毛萇注云:「芻蕘,採薪者也。」

시경(詩經) 대아(大雅)에 이르길 “선인들이 말하길 목동과 나무꾼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모장주(毛萇注)에 “추요(芻蕘)란 뗄나무를 캐오는 자이다.”고 이르렀다.

 

[注七] 無目䀕(눈동자 인)曰瞽。䀕音直忍反。

눈과 눈동자가 없을 것을 이르러 고(瞽)라 한다. 인(䀕)의 음은 직에서 인의 반이다.

 

[注八] 前書賈山曰「使天下戴目而視,傾耳而聽」也。

전서 가산(賈山)이 이르길 “천하의 모든 이목으로 하여금 보고, 귀기울여 들어본다.”고 한 것이다.

 

[注九] 景風,解見和紀。

경풍이란 그 풀이가 화기(和紀)에 보인다.

 

[注十] 左傳王子朝曰:「先王之命,王后無嫡,則擇立長。年鈞以德,德鈞以卜,古之制也。」

춘추좌전(春秋左傳) 왕자조(王子朝)에 이르길 “선왕께서 명하시길, 왕후에게 자식이 없다면 나이 많은 이를 택립하라 하셨다. 나이가 같다면 덕으로써, 덕이 같다면 점을 치라 하셨으니, 이는 고대의 제도이다.”라고 하였다.


(集解) 惠棟曰 盧植奏事下 又云所以承先祖也。 見初學記。

혜동惠棟이 말하기를, "노식盧植이 상주문을 올린 일의 아래에 선조를 잇기 위함이라고 『초학기初學記』에 보인다."고 하였다.


* 自注

* 논하고자 ~ 것입니다 : 좀더 매끄럽게 의역하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이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今同宗相後,披圖案牒,以次建之,何勳之有?豈橫叨天功以為己力乎![注十一] 

지금 같은 종상에 서로 후계가 있고, 도안(宗籍)을 풀고 족보를 살펴 그 순서로써 황제를 세웠으니, 무슨 공훈이 있다 할 것입니까? 어찌 멋대로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기의 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注十一] 


[注十一] 叨,貪也。左傳曰「貪天之功,以為己力」也。

도(叨)란 탐(貪)이다. 춘추좌전에서 이르기를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신의 힘이라고 여긴다.”라고 함이다.


(集解) 惠棟曰 圖輿地圖也。 牒宗室牒也。 披圖 則知諸王分國 案牒 則知宗室遠近也。

혜동惠棟이 말하기를, "도圖는 여지도輿地圖이다. 첩牒은 종실첩宗室牒이다. 피도披圖란 제 왕후들의 분국分國을 아는 것이요, 안첩案牒이란 종실宗室의 원근遠近을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冝辭大賞,以全身名。又比世祚不競 [注十二] 仍外求嗣,可謂危矣。而四方未寧,盜賊伺隙,恒岳、勃碣,[注十三] 特多姦盜,將有楚人脅比,尹氏立朝之變。 [注十四] 

또 대대로 이어질 제위를 견주어 힘이 없다면 [注十二] 인하여 외부에서 이어지도록 구해야 할 것이니 가히 위태롭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사방으로 안녕치 못하고, 도적이 기회를 엿보아 도적질 할 것이니, 항악(恒岳), 발갈(勃碣)에 [注十三] 특히 간적들이 많으니 장차 초인(楚人) 비(比)를 위협한 일과, 윤씨(尹氏)가 조(朝)를 세운 변(變)이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대상(大賞)을 사양하고, 몸과 명성을 온전히 하십시오. [注十四]

 

[注十二] 競,彊也。

경(競)은 강(彊)이다.

 

[注十三] 勃,勃海也。碣,碣石山也。

발(勃)은 발해(勃海)이다. 갈(碣)은 갈석산(碣石山)이다.

 

[注十四] 左傳曰,楚公子比,恭王之子也。靈王立,子比奔晉。靈王卒,子比自晉歸楚,立為君。比弟公子棄疾欲篡其位,夜乃使人周走呼曰:「王至矣。」國人大驚,子比乃自殺。王子朝,周景王之庶子。景王卒,子猛立。尹氏,周卿士,立子朝,奪猛位也。

춘추좌전(春秋左傳)에서 이르길 “초나라 공자 비(比)는 공왕(恭王)의 아들이라. 영왕(靈王)이 즉위하였을 때, 아들 비가 진(晉)에서 도망하여 달아났다. 영왕이 죽자, 아들(공왕의 아들 *自注) 비가 진(晉)으로부터 초로 돌아와 왕위에 올라 임금이 되고자 하였다. 비의 아우, 공자 기질(棄疾, 초 공왕의 다섯 번째 아들. 초 평왕임 *自注)이 그 왕위를 찬탈하고자 하였다. 밤에 다른 이들로 하여금 두루 돌며 외치게 하였는데 “왕이 이미 즉위하였다.”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아들(공왕의 아들 *自注) 비는 이에 자살하였다. 왕자 조(朝)는 주 경왕의 서자이다. 경왕이 죽자 아들 맹(猛)이 왕위에 올랐다. 윤씨는 주나라 경사(卿士)로 (경왕의 *自注)아들 조를 왕위에 세우고자 맹(猛)의 자리를 찬탈하였다.


(集解) 錢大昕曰 公羊傳 靈王作乾谿之臺 三年不成 楚公子棄疾脅比而立之。

章懷注不引公羊而引左氏 周走而呼云云非植意也。

惠棟曰 春秋經 昭二十三年秋七月 天王居于狄泉 尹氏立王子朝。 何休云 貶言尹氏者 著世卿之權。

전대흔錢大昕이 말하였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영왕靈王이 건계乾谿에 누대를 짓고자 하였으나 3년 동안 완성하지 못하자*, 초 공자 기질이 공자 비를 위협하여서 그를 옹립하였다.*

 

* 自注

* 靈王作乾谿之臺 三年不成 : 영왕靈王이 건계乾谿에 누대를 짓던 것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의거 소공 13년(B.C 529년)의 일이다. 해당 문장에서 빠진 부분을 보태면 靈王為無道인데, 이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이 영왕靈王이 무도했기 때문에 3년이 걸려서도 완성하지 못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楚公子棄疾脅比而立之 : 시간의 간격이 엄청난 문장이라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까 하다가 간략하게 번역함. 당시의 내용을 『春秋左傳』이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등을 통해서 보면 초 공자 기질楚公子 棄疾은 형인 공자 비楚公子 比와 함께 모의하여, 공자 비를 초왕으로 옹립함. 옹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직후로 보는 견해도 많음) 공자 기질이 다시 유언비어를 퍼뜨려 초왕 비를 살해하고 초 평왕楚 平王으로 즉위함(B.C 528년). 이 모든 내용을 아우를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여 "초 공자 기질이 공자 비를 위협하고서 왕위에 올랐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고 봄. 그렇게 본다고 하여도 "행간을 읽었다."라고 보면 납득이 가는 문장이기도 함. 하지만 여기서는 본문에 충실하여 공자 비가 옹립되는 순간까지로 한정하여 번역함.

 

장회章懷의 주석에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지 않으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인용되어 있다. 주위를 돌면서 외쳤다(周走而呼)에 대해서 운운하는 것은 노식盧植의 뜻이 아니다.

혜동惠棟이 말하길, "『춘추경春秋經』 소공昭公 23년(B.C 519년) 가을 7월 천자(周 경왕)께서 적천狄泉에 거처하시자 윤씨일가는 왕자 조朝를 옹립하였다.* 하휴何休가 이르길, "윤씨일가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것은 대대로 경이 되는 권세를 나타내고자 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 天王居于狄泉 尹氏立王子朝 : 소공 23년부터 있었던 3년 간의 주왕실 내전 기간 초반에 있었던 사건이다.(정확하게는 소공 22년부터 내전에 돌입했다고 봐야 함.)

* 貶言尹氏者 著世卿之權 : 번역을 직역으로 하는 까닭에 행간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대대로 경의 벼슬을 하게 되면 반드시 세력이 이루어져 나라에 해가 되는 일을 말한다. 이는 수많은 유학자들에 의하여 언급되는 것으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비롯하여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에서도 다루어져 있다.

 

(※ 참고 :

『春秋公羊傳』 尹氏者何。天子之大夫也。其称尹氏何。 貶。曷爲貶。 譏世卿。世卿,非禮也。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윤씨는 어떠한가? 천하의 대부이다. 그 윤씨는 어떻게 칭해지는가? 폄하된다. 어찌하여 폄하되는가? 대대로 경卿을 하였으므로 나무라는 것이다. 세경世卿이란 예가 아니다.

 

『春秋公羊傳』何休注 世卿者 父死子繼也。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하휴何休의 주注 : 세경世卿이란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이어받는 것(계승하는 것)이다.)



冝依古禮,置諸子之官,

마땅히 옛 예법에 의거하여, 제자관을 두고, 


(集解)何焯曰 諸子官 司馬之屬掌國子之倅。

(집해) 하작何焯이 말하길, "제자관諸子官*은 사마司馬에게 예속되어 있었으며 국자國子(=국자감)를 관장하는 사람(혹은 무리)이다."라고 하였다.

 

* 自注

* 諸子官 : 『주례周禮』에는 諸子之官,司馬之屬也。라고 나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諸子란 公(諸侯), 卿, 大夫, 士의 자식들을 말한다. 또한 제자관諸子官은 之가 생략된 형태로 실린 것인데, 같은 의미이다. 


徵王侯愛子,宗室賢才,外崇訓道之義,內息貪利之心,簡其良能,隨用爵之,彊幹弱枝之道也。」[注十五] 武並不能用。

왕과 제후들을 불러 아들을 사랑하도록 하고, 종실의 어질고 재주 있음과, 밖으로는 훈도의 뜻(訓道之義)을 숭상하고, 안으로는 이(利)를 탐하는 마음을 쉬게 하여 그 양능함*을 간하게 하며, 따르도록 하고 작위를 주어, 줄기를 강하게 하고 가지를 약하게 하는(彊幹弱枝)* 도리입니다.」[注十五]

 

두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 自注

* 양능함 : 맹자에서 양지에 대해 설명할 때 나오는 단어입니다.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는, 본연의 선함을 이야기 하는 단어이죠. 딱히 무엇이라 번역할까 하다가 그냥 원문의 말뭉치를 살려 번역했습니다.

* 줄기를 ~ 하는(彊幹弱枝) : “彊幹弱枝의 도리입니다.”라고 번역하는 게 가장 깔끔하다고 생각합니다.


[注十五] 以樹為喻也。謂京師為幹,四方為枝。

前書曰:「漢興,立都長安,徙齊諸田、楚昭、屈、景及諸功臣家於長陵。蓋以彊幹弱枝,非獨為奉山園也。」

나무로 비유한 것이다. 경사를 이르러 간이라 하고, 사방을 지라 한 것이다.

전서에서 이르길 “한나라가 일어나고, 도읍을 장안에 세우고, 제제전(齊諸田)과 초(楚)의 소(昭), 굴(屈), 경(景)에서 옮겨, 장릉(長陵)으로 여러 공신가들을 이르게 하였다. 그리하여 강간약지(彊幹弱枝)로써*, 홀로 있는 것이 아닌 산원(山園)에 봉공한 것이다*.

 

自注

* 그리하여 강간약지로써 : 蓋以彊幹弱枝 부분은 한서에서는 蓋亦以彊幹弱枝 라고 나와있습니다. 해석상에는 상호간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 산원(山園)에 봉공한~ : 소위 말하는 강본약말 정책으로 보입니다. 부호들을 이주시키고, 능원을 봉공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유로 위 부분은 위봉산원(為奉山園)은 능읍 혹은 능원을 형성하여 강본약말을 도모한 것을 말합니다.


(集解) 惠士奇曰 其後冀州刺史王芬, 南陽許攸, 沛國周旌等 連結豪傑, 謀廢靈帝, 立合肥侯, 子幹之言中矣。

(집해) 혜사기惠士奇가 말하기를, "기주자사冀州刺史 왕분王芬, 남양南陽의 허유許攸, 패국沛國의 주정周旌 등이 호걸들을 연결하여 영제靈帝를 폐위하고 합비후合肥侯를 옹립하고자 하였었으니 자간子幹(=노식)의 말이 맞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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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집해를 보다 보니 제가 오역한 것들이 곳곳에 보이네요. 지금 당장은 크게 수정하진 못하였습니다만(그래도 어느 정도 수정은 하였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오역도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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