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말에 예형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가 23세 때의 일이다. 공융은 나이가 오십이 지났고 그 신분은 구경의 대열에 올라 있는데다, 문명 또한 당대 제일로 꼽히고 있어, 만인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는 터였다. 그 명성이나 관위로 본다면 예형과도 비교도 안 되는 몸이었는데, 아무런 관직도 없는 예형과 벗이 되었고, 예형을 한조에 추천하게 되었다. 관리로 등용하여 상서랑에 제수하려는 것이었다.

 

공융의 추천문은 다음과 같다.

 

명산의 신령이 감동하여 비상한 인재가 탄생했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이든 한 번 보기만 하면 암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번 들은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나면서부터 천도에 합치하였고, 신과 같은 지혜를 지니고 있습니다.”

 

공융은 이처럼 마음 속으로 감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형은 허 지방을 유람하고 있었는데, 공경이나 명사가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전연 관명을 부르지 않았다. 모두 본명을 넣어서 아모(阿某;에 본명을 넣어서 사용 당연히 엄청난 결례)’라고 부른다. 혹은 성을 불러 모아(某兒)’라고 한다. 공융을 대아라 부르고 양수를 소아라고 불렀다.

 

예형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 외에 순욱 정도는 말 상대가 되겠지만 그 이하의 사람들은 모두가 나무나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 사람을 닮았지만 인간다운 피가 통하지 않으며, 술을 담은 항아리나 밥을 담은 주발 정도밖에는 안 된다고 한다.

 

어느 날 백관이 모인 연회가 벌어졌다, 예형도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돌연 눈살을 찌푸리면서 슬픈 듯 개탄하였다.

 

어떤 사람이 나무라듯이 말했다.

 

영웅 호걸들이 즐겁게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탄식을 하다니, 불손하지 않는가.”

 

예형은 곁눈질로 그 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을 쭉 흝어보고는 대답했다.

 

이와 같이 시체와 관통만이 늘어서 있는 자리에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조공도 이를 갈면서 예형을 살해하려고 한 때가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생각할 때 사형에 처할만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다, 젊은 학자를 살해했다는 평판이 나돌면 역시 곤란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태고를 치는 관리로 좌천시켰다. 그러나 형은 전혀 후회하는 빛도, 부끄러워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한 번은 뿔피리를 기둥에 메달고 입으로 불었다. 그러자 다른 음색이 나왔다. 흔들리는 북을 돌려가면서 태고를 친다. 그 소리를 들으면 혼자서 북을 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도 의논이 분분하고 과격하여 스스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예형은 도주하여 형주의 목사인 유표에게 몸을 맡기었다. 유표는 오의 손권에게 서한을 보내어 조조를 토벌하려고 생각했다. 당시의 손권은 이미 강동의 전토를 점령하였고, 갑주의 병사만도 백만이었다.

 

유표는 그와 손을 잡고 위에 대항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여러 문사들에게 서한의 초고를 작성케 했지만, 그들이 애쓴 보람도 없어 문장은 한결같이 유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표는 그것을 예형에게 보였다. 예형은 초고를 흝어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손권의 좌우 측근인 무사들에게 보이는 것이라면 이것으로 족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장자포에게 이 글을 보인다면 아마도 큰 창피를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초고들을 북북 찢어서 땅에 버렸다. 그런 행동을 보고 있던 유표는 갑자기 안색을 변하면서 예형에게 말했다.

 

전혀 새로 고쳐 써야만 하는 것이오?”

 

유표는 그 초고들이 애석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형은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고, 곧 다기 써내려갔다. 작성된 초고는 모두가 열 통이었다. 예형은 한 번 흝어본 것 뿐인데, 이미 그 모두를 암기해버린 것이다. 다 쓰고 나서는 그것을 유표에게 주었다. 유표는 그것을 받아서 초고를 썼던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다. 그 중에는 청서를 쓰기 전에 하서를 남긴 사람도 있었다. 예형이 쓴 글과 비교해 보니 글자 한 자도 틀린 곳이 없었다, 그제서야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리하여 유표는 예형에게 다시 초고를 부탁했다. 예형은 즉석에서 작성했지만 손 한 번 쉬지 않고 단숨에 내려 갈겼다. 유표는 그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그 길로 사신을 보냈다.

 

예형의 오만한 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형주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워했고, 관리 중에서는 앙심까지 품은 자도 있었다. 유표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하여 그를 살해하고자 했다. 이를 보고 한 사람이 말했다.

 

조공은 가혹하다 하여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참았습니다. 예형은 아직 나이가 젊기 때문에 허명만 높을 뿐입니다. 만약 여기서 그를 살해한다고 하면 천하의 낭인들도 이 땅에 발을 디딜 자가 없어질 것입니다.”

 

유표는 그길로 예형을 추방했다. 예형은 하구로 가서 장군 황조에게 의탁하게 되었다. 황조는 그를 상객으로 맞이했다.

 

어느날 예형은 황조의 장남인 황역과 함께 외출했다가 우연히 남의 묘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잠시 묘 앞에 서서 묘비명을 읽은 다음 길을 떠난다. 한참 후에 황역이 말했다.

 

아까 보았던 비문은 명문이었소. 문구를 베꼈어야 했는데, 유감입니다. ”

 

예형이 말했다.

 

당신은 묘주의 이름만 기억하겠지만, 나는 한 번밖에 읽지 않았어도 그 문구까지 다 기억했소.”

 

그리고는 황역을 위해서 그 문장을 써주었다. 비문의 마지막 한 자가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어, 그것만은 확실치 않았다. 예형은 그 글자를 반만 쓰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이 자가 쓰여져 있었던 것 같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황역은 조사해 보고 과연 그렇다고 했다.

 

예형은 남을 경시하는 행동을 했지만, 남몰래 출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때문에 시골 구석에 은거하지 못하고 귀족사회의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방자한 행동은 남의 눈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혹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입만 열면 미움을 사고, 한 발자욱만 내딛어도 함정이 기다린다. 이와 같은 태도로 어찌 세간에서 받아들일 수가 있으며, 편안히 죽을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올빼미와 여우의 우는 소리가 불길하다 하여 사람들이 꺼리는 것을 그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는 아무리 주거를 옮겨 보아야 소용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허도라는 곳은 인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공융은 그곳의 수령이었다. 이러한 공융의 보호 아래에서 지낸다면 그 이상 좋은 곳은 없다. 이러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고 하면 다른 곳이야 찾아가나마다 한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라면 유부나 편작이라 할지라도 어찌 할 수 없으며, 시든 나무와 납 뭉치로야 공수반이나 구야라 해도 작품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예형은 형주로 달아났고, 마침내 더없는 재난을 당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예형이 앞일을 내다볼 줄 몰랐다는 증거이다. 생각건대 예형은 출세하기를 바랬지만, 출세할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 것이다. 결코 출세할 만한 능력은 있었지만, 불행히 출세할 수 없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 재사는 주의해야 한다.

 

혜군이 말했다.

 

저는 예형의 허명에 눈이 멀었습니다. 선생의 말씀하신 것은 예형의 결점을 정확히 포착한 것입니다. 이제야 가르침을 받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공평하신 의견에 고개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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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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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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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상

2014.05.11
20:08:12
(*.52.91.73)
여기서 재밌는 것은 손권 군사가 100만이라고 한 것. 연의까지 가지 않아도 진나라 시절부터 뻥튀기는 당연한 분위기. 그외에는 겹치는 내용과 여기에 아직 번역 안 된 내용 정도일 듯. 그외에 갈현이 자기의 뜻을 말하기 위해 바꾼 부분이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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