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의 둔전


둔전이라는 명칭은 한 소제(漢昭帝) 때에 시작되어, 처음으로 장액군(張掖郡)에다 둔전을 설치했는데(馬가 이르기를, “文帝 때에 晁錯가 上言하여 먼 지방 軍卒이 한 해 동안 邊塞를 지키는데 항상 살고 있는 그곳 사람과는 같지 않다.” 하므로 집을 마련하고 농사를 지어서 대비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둔전의 시초였다. 武帝 때에 桑弘羊이 輪臺에 둔전을 실시해서 西域을 威壓하기를 청했으나 임금이 따르지 않았다), 그후 선제(宣帝) 신작(神爵) 원년(기원전 61)에 조충국(趙充國)이 선령강(先零羌)을 공격하면서, 기병이 둔전하던 것을 없애서 그 폐단에 대비했는데, 이에 따라 둔전조례(屯田條例)가 크게 정비되었다. 대개 변새는 땅이 거칠고 텅 비어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서 능히 개간하지 못하며, 또 주둔하는 군졸은 양식을 먼데에서 실어오니 백성은 수고롭고 군졸은 항상 굶주린다. 군사를 돌리면 변방 걱정이 또 일어나고, 오랜 세월을 버티자면 안팎이 함께 고달파지므로 이것이 둔전을 만들게 된 까닭이다. 그런데 동한(東漢) 초부터 비로소 내지(內地)에도 점점 둔전을 설치하게 되었다. 마원(馬援)은 상림원(上林苑)을 둔전으로 하기를 청했고, 왕패(王覇)는 함곡관(函谷關)에다 둔전을 설치했으며, 조조(曹操)는 허하(許下)에다 둔전했고, 제갈량(諸葛亮)은 오장원(五丈原)에서 하려했으며, 양호(羊祜)는 양양(襄陽)에 둔전했는데, 이것들은 둔전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긴 했으나 사실 원 취지의 둔전이 아니었고 임기응변이라 봄이 옳으리라.


조선(朝鮮)의 둔전


우리나라에는 임진년에 왜적이 침범한 이래로 군문(軍門)을 여러 차례 설치해서 5~6개나 되었고, 군영(軍營)을 하나 설치할 적마다 문득 둔전을 두었다. 그리하여 경성(京城) 부근과 기전(畿甸) 들판과 바다 가운데의 여러 섬과, 먼 지방 비옥한 땅이 혹 둑을 쌓아서 물을 가두고, 혹 냇물을 막아서 물을 끌어오며, 혹 둑을 쌓아서 조수를 막기도 하여 다 둔전을 만들어서 장서(莊墅)로 하고 백성을 모집해서 경농한 다음, 그 이를 수입한다. 대저 군졸(軍卒) 한 사람도 주둔하지 않는데 어찌하여 둔전이라 부르는가? 장신(將臣) 집에서 그 자제나 문객(門客)을 가려서 소교(小校)로 삼고, 나가서 둔감(屯監)이 되도록 하는데, 무릇 둔전에서 천 석을 수입했으면 둔감이 그 중에서 아홉을 먹고 겨우 하나를 영문(營門)에 납부하나 또한 장신의 솜씨대로 잡용(雜用)하는 것을 허락한다. 나라의 전총(田總)은 날마다 줄어드는데 공로 없는 이 소교를 살찌우며, 장신의 부유함은 삼공(三公)보다 더하다. 이리하여 교만하고 사치하며 음탕하고 방자하여 능히 의리대로 하는 자가 드무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적이 상고하건대 삼대의 법에, 천하의 전지는 모두 둔전이었다. 소사도(小司徒)가 정남(丁男)을 뽑아서 3등급의 땅[三壤]을 주면, 대사마(大司馬)가 뽑아서 군졸로 만들고 사시(四時)에 교열(敎閱)했으니, 천하의 전지가 모두 둔전이 아닌가? 만약 삼대 때 법과 같이 한다면 오직 속오군(束伍軍)이라야 이에 전지를 줄 수 있으며, 무릇 속오군이 되기를 원치 않는 자는 곧 한고랑의 전지도 요행으로 얻을 수 없었다. 선왕은 전지로써 군사를 양성했는데 지금에는 쌀로써 군사를 양성하니 어찌 능히 지탱해내겠는가?

진실로 둔전을 만들려면 경성에서 30리 안에 있는 모든 전지를 죄다 매입(買入)해서 둔전으로 만들어 영문의 번(番)을 쉬는 군졸에게 나가서 경농하여 생업으로 삼도록 하는데, 그 요(料)를 주는 여러 가지 비용도 죄다 여기에서 제감하고 오직 시기에 따라 무예를 연습시키고 돈과 베를 상으로 주면, 국용(國用)이 넉넉해지고 군사 제도도 엄정해져서 이에 삼대의 옛 제도대로 회복될 것이니 《주례》 6수(遂)의 법이 곧 이 법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여러 도, 여러 현에 있는 것은 아울러 그 현에 붙여서 군전(軍田)으로 만들면 무비(武備)도 거의 힘입는 데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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